"한나라당! 이리도 모질 수가..."

유족들, 초조·불안·망연자실·신경쇠약에 시달려

검토 완료

이창수(lcs)등록 2004.02.26 11:52
50년을 참아 온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들이 거의 실신상태에 있다. 강산이 다섯 번 바뀌는 동안 억울한 한을 삭이고 삭이며 진상규명만을 바라고 있던 유족들은 3년 동안 국회 절차를 지켜 만든 진상규명법안이 한나라당의 반대로 본회의 문턱에서 표류하자 국가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가족들의 제삿날을 알고 제사드릴 곳이나 찾고자 한 게 한이 되어 유족들은 청춘이 백발이 될 때까지 진상규명을 위해 백방의 노력을 다해 왔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지금도 법 제정을 막고 나선 보수단체와 한나라당, 그리고 아무런 대책이 없는 국회. 유족들의 울분과 원성을 이렇게 모질게 외면할 수 있는가!

[경북 문경]마을 주민들을 사냥물처럼 총살했다. 이름도 없는 아기가 빨갱이인가!

전쟁도 아닌 평시였던 1949년 12월, 국군들은 '국군을 환영하지 않으니 빨갱이'라며 갓난아기 5명과 어린이 26명 그리고 여자, 노인할 것 없이 석달마을 주민 86여명을 전부 몰살했다. 가족과 친척 9명의 피투성이 주검 아래서 기적같이 살아남은 문경유족회 채의진 회장(69)은 이제는 정말 죽음밖에 의지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식사를 하다가도 독서를 하다가도 누구와 대화를 하다가도 길을 걷다가도 심지어 학교 교실에서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그 때의 그 참상이 떠오르면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은 아픔과 슬픔과 분노와 증오에 몸부림쳐야 했었고 살을 도려내고 뼈를 깎아내는 그 엄청난 아픔과 슬픔과 분노와 증오를 한숨과 눈물로 삭이며 그래도 그 때 그 참혹했던 아비규환의 학살현장에서 생존한 한 인간으로서 언젠가는 억울하게 학살당한 분들의 통한을 꼭 풀어드리겠다는 그 일념으로 지금까지 내 삶을 지탱해왔었다"

채의진 회장은 14년 전부터 생업을 포기하고 진상규명법 제정에만 매달렸다. 민주화 인사라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도 제주4.3법과 거창법만 만들고 치적으로 삼는데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족의 통한을 풀겠다며 지금껏 버텨온 유족들에게 한나라당은 법안 상정 보류라는 날벼락을 내렸다. 한나라당은 갓난 아기도 빨갱이라며 반대하는 일부 단체의 주장이 상식으로 들린다는 말인가!

[전남 완도]항일투사들이 학살당했고 후손들은 굶어 죽어간다. 국가는 무엇을 했는가!
완도지역 김보희 유족(69세)은 20여년간 기천만원의 돈을 들여 전국을 오가며 완도 학살사건을 쫓았다. 김 유족은 "완도지역은 항일운동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당시 항일투사들이 친일세력인 이승만 정권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근거도 없이 좌익으로 몰려 학살당했고 그 후손들이 연좌제로 고통받으며 살고 있는 게 분통이 터져 진상규명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50년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진상규명법을 눈앞에 두고 있다가 보수단체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법안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불과 며칠 전인 19일, 전라남도 의회에서도 민간인학살진상규명 조례를 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발의했는데 재향군인회 등 일부단체가 본회의 당일 의회를 방문해 조례 제정이 무산돼버린 것이다.

"진상규명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도대체 말이 안 된다. 진상규명법에 나오는 것은 보상도 아니고 보복도 아니다. 총 쏜 사람도 죽고 맞은 사람도 죽은 마당이다. 숱한 예로 산에서 나무를 해오던 부녀자들을 빨갱이에 부역했다고 그냥 쏴 죽인 그런 것 너무 억울하지 않나. 진실을 밝혀서 잘 죽었으면 잘 죽었다, 억울하면 억울하다고 한을 풀어줘야 하고 그건 결국 국가가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개탄했다.

밝히면 밝힐수록 절박한 마음이 커진다는 김 유족은 "원내 제1당이든 지자체든 보수단체에 그렇게 무력하다면 내가 직접 보수단체들과 방송토론을 하겠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이 제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정녕 대한민국 국회 위에 우익이 있는 것인가?

[전남 여수]하늘이 지붕이고 땅이 몸누일 곳. 그 고통과 설움을 누가 보상하랴

여순유족회 김화자 유족(56세)은 "지금 국회의원들은 일말 양심도 없는 사람들이다. 국민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한다. 차떼기다, 채권떼기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별의별 짓을 다 해놓고 자기만 누리고 살면 다 인줄 안다. 헐벗고 어렵게 굶주리며 사는 국민들 마음은 지금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정말로 각성하라"고 일갈했다.

김 유족은 "세살 때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학살당했지만 크는 동안 온갖 설움 다 당했다. 우리 집도 땅도 오촌이 다 가져가도 나는 혼자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굶주리면서 사는 것 같지 않게 살았다. 유족들이 거의 부모 잃고 고아 돼서 고통받았고 지금 전부 병들어 죽어간다. 생활 어렵고 배우지도 못했고 직장도 못 얻어서 거의 막노동하면서 너무나 힘들게 살았는데 50년 지나도 한도 풀지 못하게 하는 것이냐"며 원통해했다.

"다른 유족들도 나도 마찬가지로 지난 고생의 응어리가 몸으로 배어 나와 숨이 차고 몸이 너무 아프다. 너무 너무 세월이 흘렀다. 지금이라도 늦었지만 이제는 유족들이 고통받은 세월만큼 아픈 현실을 우리 국민들이 같이 인정하고 같이 치유해야 한다. 한이라도 풀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恨나라당이 될 것인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당이 유족들의 이런 비통함을 어떻게 그토록 모질게 외면하는가!

[경기 고양]가해자도 다 밝힌 학살. 이념이 뭐길래 유족들의 마음을 천갈래, 만갈래 찢느냐

고양금정굴 서병규 회장(69세)은 "고양금정굴 학살은 유족들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충격속에서도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서 국회에 수없이 청원하고 자체적으로도 노력했고 우익단체 중 몇몇 사람들도 양심선언으로 학살 진상을 낱낱이 밝혀서 이제 학살은 속일라야 속일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나는 더 이상 가족을 공권력에 의해 학살당한 그 억울한 마음 더 이상 견디기 힘들고 반평생을 가족을 잃고 마음에 합병증과 신경성 난청으로 2급 장애자로서 너무나 힘든 긴 세월 속에 살아 와 가족 생각에 남몰래 울기도 많이 울었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가신 부모 형들 생각에 몇 번을 죽으려고 마음을 먹은 적도 많았다."

그러나 보수단체와 한나라당의 반대로 또 다시 법제정이 위기를 맞자 서병규 회장은 "이렇게 유족들의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있냐"며 망연자실했다.

서 회장은 "도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인가요? 억울하게 부모형제를 잃고 마음속에 그 억울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늘날까지 얼마나 노력하여 왔던가요. 언제,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어디서 학살했던가요"라고 물었다. "억울하게 가신 영령들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아픔을 견디며 살아왔는데 누구를 해치자는 것도 아닌 진실을 밝혀달라는 법을 반대하다니 유족들에게 빨리 죽으라고 그냥 죽으라고 하는 것이나 같다"며 가슴을 쳤다.

법안 상정을 보류시키고 16대 국회 마지막 임시회기 종료를 이제 3일 남기고도 한나라당은 오늘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 한나라당은 진정으로 유족들에게 죽으라는 것인가!

[전남 고흥]법제정 지체하면 안된다. 증인이 사라지면 역사는 누가 밝힐 것이냐
고흥유족회 유일선 유족(54세)은 "지금 심정은 말로 다 못한다. 너무 초조해서 수시로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예 눈감고 생각하지 말까 하면서도 다시 생각나고 잠도 안 온다. 끝없이 울고 싶고 주체할 수 없다"고 말끝을 흐렸다.

유일선 유족은 국회의원들에게 "지금껏 꾹꾹 참으며 끝까지 이해시키려고 했는데 반세기가 되도 법이 안된다니, 우리의 원통함을 만 분의 일이라도 헤아린다면 이럴 수는 없다"며 애통해 했다."고흥은 여러 자료를 통해 200여명이 학살된 사실이 이미 밝혀졌다. 우리 자식들에게 할아버지의 죽음을 얘기해도 잘 이해하지 못해 답답한 데, 지금 생존해있는 고령의 증인들마저 죽고 나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민간인학살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없을 만큼 이미 학계와 언론을 통해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지금 유족들이 죽는다고 해서 민간인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요, 이미 알려진 사실을 공식화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교육을 시키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우리 역사의 산증인들이 하나 둘 사라지면서 우리 나라가 점점 썩어가는 것을 모른다 할 것인가.

[경남 거창]"괘씸하다. 철썩같이 믿고 있는 군민들을 속여?"

임춘택 함양유족회 총무(56세)는 뒤늦게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이강두 의원이 법제정을 반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경악했다. "이 지역은 학살 유족들이 숱하게 많고 이미 법이 만들어진 신원면 사건 말고도 학살이 많았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인데, 정말 이강두 의원이 반대하나"하고 거듭 거듭 확인했다.

이강두 의원은 그 동안 거창군민들을 만날 때마다 언제나 "알았다.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이강두 의원이 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을 맡게 되면서부터 거창군민들은 진상규명에 대해 더욱 큰 기대를 갖고 그저 믿어왔을 뿐이다.

임춘택 유족은 "괘씸하다. 괘씸한 일이다"고 되뇌이며 당장 전화를 해보겠다고 했다. 연락도 잘 닿지 않는 산골에서 법 제정을 장담하던 이강두 의원만 믿고 있던 유족들은 이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듯했다.

50년 동안 한을 품고 숨죽여만 살아 온 유족들이 법에 대해 걸고 있는 기대와 분노의 크기를 한나라당은 알아야 한다.

이미 50년을 참아 온 유족들에게 '다음'이란 없다. 지난 3년 동안의 법제정 과정에서 어느 한 고비도 순탄하지 않았고 노구를 끌고 미친 듯이 다니며 호소하고 설득하고 농성하면서 그렇게 온 몸을 던져가며 본회의까지 왔다. 이들에게는 단 하루를 더 기다리라는 말도 너무나 가혹하다.

[인천 강화]약하고 불쌍하고 한맺힌 사람들 돌보지 않으면 망한다. 망할 수밖에 없다!

강화유족회 서영선 회장(67세)은 "지금 심정은 딱 한나라당 앞에서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서 유족은 12살에 세 가족을 학살당하고 홀홀단신으로 자랐다. 못 배운 설움과 굶주림, 온갖 차별을 참으며 이를 물고 버뎠지만 억울하게 죽은 영령들의 한 만은 풀겠다는 결심으로 혼자 힘으로 가해자를 찾아냈고 유족들을 모았으며 수 년째 위령제를 모시고 있다.

지난 세월 갖은 고생에 보람을 느끼며 법 제정만을 학수고대해 온 서영선 유족은 결국 보수단체를 등에 업고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한나라당에는 자제력을 잃었다.

"그렇게 평생을 바쳐 간절하게 기다려 온 유족들한테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은 인도적으로나 도의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약하디 약한 유족들 불쌍하고 억울하게 살아 온 한맺힌 유족들을 희생양으로 총선을 이기겠다니. 약한 사람들 짓밟는 그런 당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 결국 망하게 돼 있다"며 분개했다.

유족은 이제 조용히 딸들에게 글을 남겼다. "이 법은 그나마도 너무나 미약한 법인데 이마저도 허공을 떠돌고 있으니 실망과 자책이 끝이 없다. 나의 어떠한 행동도 믿을 수 없기에 내가 하직하더라도 나의 삶을 조명해주기 바라며 미안하고 슬픈 일이나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비단 이 뿐인가! 한나라당은 이런 고통의 행진을 언제까지 계속시킬 것인가? 얼마나 더 많은 유족들이 쓰러지고 죽은 후에야 법 제정이 필요하다 할 것인가? 한나라당은 과연 반인권, 반역사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16대 국회를 마칠 것인가?

한나라당이여! 50년이면 충분하다. 한나라당은 즉각 모든 국회 절차를 통과한 '6.25전쟁휴전이전민간인희생자진상규명및민간인희생자명예회복등에관한법률안'을 상정, 제정하라!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