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청바지에 단화를 신은 교수님을 보고 싶다

교수를 꿈꾸는 친구가 비행기안에서 만난 영국교수와 한국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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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동섭(surfingman)등록 2004.02.25 17:36
해질 무렵 낯선 번호가 찍힌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지역번호가 서울인 번호에 '누구지?' 하는 의구심을 품으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섭이가! 내다 철이다"
"이야! 니 오늘 귀국이가?"
"그래! 별일 없었제?"

한달 보름 전, 개인적인 일로 영국으로 떠났던 친구 녀석이 제가 보고싶다며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 달라는 전화였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꼭 보던 사이인지라 친구가 없던 한달 보름은 제게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습니다. 보고픔을 가득 안은 채 공항으로 갔습니다.

친구의 모습이 빨리 나타나길 기다리며 승객들이 나오는 출구에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십 여 분이 흐른 뒤 두리번거리며 나를 찾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내 저를 발견한 친구는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흔들며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다가오던 친구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같이 걸어나오던 50대 초중반의 한 남자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친구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그 중년의 남자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누고?"
"아∼, 영국에서부터 대구까지 같은 비행기 타고 온 사람인데 XX대학 교수란다."
"아! 그렇나!"

'맵고 얼큰한 음식이 먹고 싶다'는 친구와 함께 평소 자주 가던 따로국밥 집으로 향했습니다. 국밥을 비운 친구는 비행기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긴 비행이 무료했던 친구는 옆자리에 앉은 노신사에게 대화를 청했다고 합니다. 물이 다 빠진, 낡은 청바지와 수년 동안 신었는지 가죽이 하얗게 바랜 단화를 신고 책을 읽고 있는 노신사가 꼭 학자처럼 보여서 '혹시 교수냐'고 서툰 영어로 물었답니다.

친구의 질문에 노신사는 무슨 대학의 교수이고, 연구 분야는 어떤 것이며, 현재는 세미나 참석 차 일본에 가는 길이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원활하지 못한 의사소통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영국의 그 노교수가 상당한 인격과 지적 내공의 소유자임을 알아보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대단히 검소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친구는 제가 공항에서 본 중년의 한국 교수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부터 친구와 같은 비행기를 탄 그 교수는 착석하자마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노트북을 펼쳐 카드게임에 열중을 했다고 하더군요. 카드게임이 싫증 났는지 한국 교수는 친구와 영국 노교수와의 대화를 얼핏 듣고, 친구가 한국 사람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붙였다고 합니다.

자신은 대구의 모 대학 모 학과 교수이며, 골프여행 차 유럽에 갔다가 영국에 잠시 들러 귀국하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방학이 되면 세계 각지로 여행 다니는 것이 삶의 낙이라는 이야기까지 덧붙였다고 합니다.

친구는 그 한국교수의 천박함에 같은 한국인으로서 많이 부끄러웠다면서 그 교수에 대해 열심히 성토했습니다. 그러다 영국 교수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습니다. 영국의 경제 상황을 감안한다면 영국 교수들은 우리에 비해 보수가 훨씬 적으며, 연구할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에 골프나 여행은 웬만해서는 꿈도 못 꾸며, 영국의 교수들은 사회적 존경을 먹고사는 집단이라고 하더군요.

장차 교수를 꿈꾸는 제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자신이 가야할 길과 절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는 친구의 얼굴엔 씁쓸함이 가득했습니다. 이 사회에서 존경과 거리가 먼 교수들은 비단 친구가 비행기에서 만난 그 한국 교수만은 아닐 것입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 자신의 안위를 위해 불의에 침묵하며 양심을 팔았던 교수님들, 이름이 알려지면 정치판에 뛰어들어 진흙탕 싸움도 불사하는 용감한(?) 교수님들, 제자를 성희롱하고도 반성하지 않는 파렴치한 교수님들, 대학원생 혹은 조교를 자신의 하인쯤으로 생각하는 권위주의적 교수님들, 시간강사의 비애를 모른 척 하는 무심한 교수님들, 자신의 후배와 제자의 연구를 태연스럽게 자신의 연구인양 발표하는 뻔뻔한 교수님들, 푼돈에 연연하며 가짜영수증을 만드는 치사한 교수님들. 이러한 부정적인 모습들 속에서 나만은 자유롭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 나라의 교수님들이 과연 몇 분이나 계실까요?

영국 교수와 한국 교수의 차이를 발전된 사회, 문화의 차이라고 탓을 하기엔 그 씁쓸함이 너무나 큽니다. 고급차를 타며 번지르르한 얼굴로 골프를 즐기시는 교수님들을 이제는 그만 보고 싶습니다. 낡은 청바지에 단화를 신어도 학자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그런 교수님들을 너무나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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