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인생의 보물찾기, 혹은 거대한 발견

인간은 선하고자 하나 사회는 그것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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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urangin)등록 2004.02.05 11:15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주어진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외로움일 것이다. 모두가 다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부자가 되는 것을 극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다 권력을 잡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권력이 자신의 옆에 다가오는 것조차 징그러워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외로움은, 누구나 다 좋아한다. 그리고 또 싫어한다.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이 양가적 감정이야말로 인간이 얼마나 모순된 존재인가를 말해준다. 못 살겠어, 외로워서 못 살겠어, 하다가도 돌아서면 아, 혼자 있고 싶어, 제발 나를 좀 혼자 있게 내버려 줘, 하는 게 우리들 인간이 아니던가. 아, 그렇다. 인간은 각자 외로움의 생산자인 동시에 그것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자신이 생산한 이 외로움을 누구에게 팔아먹을 것인가? 혹은 선물할 것인가?

답은 없다. 아니다. 답은 있다. 최상의 답이라면 역시 자살이다. 그러나 자살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답은 아니다. 차선의 답은 티격태격 싸우는 일이다. 싸워도 크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잘하게 싸우는 것. 큰 싸움은 적개심과 분노 이 두 가지 요소만 갖추면 되지만 자잘한 싸움은 인간의 모든 감정이 동원된다. 시큼하고 상큼하고 짭짤하고 씁쓸하고 달콤하기도 한 이 싸움은 그래서 재미가 있다.

티격태격 싸우는 것으로는 연애만한 것이 또 있을까. 달라거니 안 준다거니, 가지라거니 안 가진다거니, 먹으라거니 안 먹는다거니, 아프지 말라거니 가다가 넘어져서 다리나 칵 부러지라거니 등등 연애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싸워야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 연애가 부부라는 틀 속으로 진입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연애 시절에는 안 그랬는데 왜 이모양 이꼴이냐느니 뭐라느니 점입가경이 따로 없다.

아,사설이 길어졌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어느 날 당신이 누군가의 아내가, 혹은 남편이 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실지로 결혼식을 올린 것도 아니고 동거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법률적으로만 말이다. 그 마음이, 심리가 예전과 똑같기만 할까.

혼인신고라는 요식행위는 물론 국가기관의 개인에 대한 통제와 관리의 필요에서 고안된 것이기는 하다. 우리가 신앙처럼 받아들이는 종족보존을 위해 결혼한다는 그 믿음이 국가기관에 의해 퍼뜨려진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결혼을 안 한다고 아이가 생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혼인신고를 안 한다고 부부가 부부 아닌 관계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쨌든 우리는 혼인신고 같은 요식행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리하여 혼인신고는 이제 신과도 같은 막강한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권위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건 본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용도로 쓰여지는 길이 나타나기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양가적 감정을 가진 인간사회가 운영되는 하나의 법칙이라고 말하면 지나치게 시니컬한 발언일까?

한 여자가 있다. 그리고 한 남자가 있다. 우선 남자부터 말해보자.

교양미 쏠쏠 풍기는 신사가 되기는 애저녁에 글렀고, 변변한 깡패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건달 축에도 못 드는, 고등학생들에게 포르노테잎이나 팔다가 십여일씩 구류나 살고 나오면 보스에게 잡혀 "생각을 하면서 살자"는 이유로 얻어맞기나 하는 떨거지 중에 떨거지, 양아치 중에 양아치,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귀찮아서 싱크대에 대놓고 쏴아, 오줌이나 갈기는 게으름뱅이 중에 게으름뱅이, 주먹세계를 살면서도 주먹이 보잘것없는 까닭에 친구를 형님이라고 부르며, 올라오는 후배들에게도 얻어터지기 일쑤인, "짐승 뱃속에서 태어나 네 발로 기어다녀도 너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식의 구박이나 받는 도무지 어떻게 해볼 길이 없는 오리새끼 중에 오리새끼, 그런 그에게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증명은 있다.

아, 물론 그에게도 꿈은 있었다. 배 한 척 살만한 돈만 벌면 태어나서 자란 꿈같은 고향으로 가서 선주가 된다는 청사진. 이 꿈은 과거형이 아니라 아직 진행형이다. 이런 꿈을 가진 자가, 그런 꿈을 놓지 못한 자가 깡패스런 깡패가 된다면 그것도 이상할 법하다. 기껏해야 이 세상에서 자기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헛된 큰소리나 빵빵 질러대는 것이지. 그런데 이런 사람의 특징은 마음에 한 칸 아주 작고 은밀한 창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절대로 끝까지는 악해지지 못하는 연민이라는 창고, 빚을 받으러 갔다가 오히려 쌀을 사주고 돌아오는 식의, 사람을 때리다가 자기가 울어버리는, 이것을 뭐라던가. 페이소스라고 하던가. 사람을 눈물나게 하는 것, 그렇다고 마냥 눈물이나 흘리게 하는 게 아니라 웃다가 울다가 스스로 미친 게 아닌가 의심을 하게 만들어버리는 것, 그래서 가장 인간적인, 하나의 보물.

이 보물이 바야흐로 빛을 내기 위해서는 거울이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계기, 이 계기야말로 한 인간의 본성이 가장 화려하게 드러나는 꽃의 시기라 해도 과장은 아닐 거다. 한 송이의 무엇무엇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어쩌고 했다는 얘기를 떠올려도 뭐 괜찮다. 좋다. 아 그래, 피를 토하며 운다는 소쩍새, 그 한 마리의 소쩍새가 저기 북쪽에서 날아온다. 임을 찾아온 것은 아니다.

뿌리를 찾아 왔지만 포기하고 현대의 신이라 일컫는 돈, 돈, 물신(物神)을 찾아내기로 방향을 선회한 여자. 불법체류자. 그래서 남편이 있어야 하는 여자. 남편이 없으면 당장에 추방을 당해야 하는 여자. 감백란, 중국식 발음으로 파이란.

삼류 중에 삼류, 떨거지 중에 떨거지인생 장대는 영광스럽게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당당하게 증명서가 있다. 그리하여 그 안타까운 여자 파이란에게 배정되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된다. 서류상으로만, 증명사진을 붙이고 도장 쾅 찍기만 하면 장대에게는 돈 몇푼이, 파이란에게는 한국에 있어도 된다는 자격증이 되는 것.

서류상의로만 부부에게도 무슨 의미가 있나? 이런 것은 질문을 하는 자가 어리석다는 것쯤 누구나 안다. 그런데 꼭 그렇기만 할까? 적어도 여자에게는, 그 복잡한 감수성의 소유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가 없다. 여자란 본디 그런 존재가 아니던가.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여겨지는 것에서 자기만의 보물을 발견해서 소중하게 간직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 물론 계기는 있다.

사내가 장난삼아 던져준 빨간 마후라, 그리고 증명사진 한 장. 여자에게 그 정도의 상징이면 엄청난 것이라 해도 뭐 괜찮다. 안 그런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이 있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단 말이냐. 어쨌든 그녀는 예정된 순서대로, 코스에 따라 당연히, 너무도 당연하게 술집으로 팔려간다.

그런데 이게 뭐냐. 팔려간 당일 여자는 정말로 소쩍새가 토해내는 붉은 피 같은 선혈을 토해낸다. 병이다. 병이 드러난다. 그것도 불치의 병이다. 손님을 상대할 수도 없거니와 상대해서는 안 되는 병. 통쾌하게도 인신매매자들은 당황하기 시작하고, 아, 이 장면은 아마 관객에 대한 감독의 서비스일 거다. 그러니 뭐 별 중요한 대목은 아니다.

그리하여 술집이 아닌 세탁소 생활을 하게 되는 그녀, 파이란, 외롭다. 건강해도 외로울 판에 병까지 있으니 더 외롭다. 외로워서 가짜 남편의 사진을 보고, 장난삼아 던져준 빨간 마후라를 목에 두른 채로 눈물 콧물 울기를 몇날며칠, 찾아가볼까. 문득문득 생각이 나서 칫솔을 사도 두 개를 사고, 자기가 정말로 누구의 아내인 것처럼, 남편을 기다리는 재미로 세상을 사는 여자인 것처럼 편지를 쓰기도 하고, 미쳤어 정말.

미쳤기에 순진하고 또 순진한, 그래서 죽어야 하는 여자, 거짓된 정의의 땅에서는 단 한 평의 땅도 발붙일 곳을 얻을 수 없는 여자. 인신매매자들의 어이없는 빚독촉과 협박이 전제되는 한에서만 겨우 존재할 수 있는 여자, 그래서 한 번 더 죽어야 하는 여자. 드디어, 죽는다. 죽어 버린다.

아무것도 모르는, 죽어야 하는 여자 덕택으로 돈 몇푼 얻어 쓰고는 이내 잊어버렸던 사내, 삼류 중에 삼류인생 강재에게 어느 날 경찰서에서 순경이 나오는데, 이유인즉 부인이 사망했으니 시체를 인수해 가라는 것.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놀라고, 또 귀찮지만 그렇다고 경찰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는 것. 아내 아닌 아내의 증명사진 한 장이 뒤늦게 손에 쥐어지고, 이때서야 비로소 그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보게 되는데, 느낌이 묘하다. 묘하지 않으면 그게 또 이상하겠지?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덤이냐. 배달되지 않은, 배달될 수 없었던 그녀의 편지도 있다.

강재씨에게......이렇게 시작되는 아내 아닌 아내의 편지. 결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다 친절하지만 강재씨가 제일 친절합니다.

이건 뭐냐. 이 여자가 왜 이런 편지를 쓰나. 결혼해줘서 감사하다니, 이런, 이런, 미쳤나. 감동이 시작되는가? 그렇다. 이런 편지에 감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삼류가 아니다. 삼류이기 때문에 감동해야만 하는 사내. 자초지종을 알아보고자 인신매매자를 찾아가는데,

"내가 제년한테 받을 돈이 얼마인데 내 허락도 없이 아프고 죽어버려, 이 썅."

인신매매단 소장의 이 한 마디, 예전 같으면 맞장구를 치며 낄낄거렸겠지만 감동을 알아버린 삼류인생 강재씨, 씁쓸하다. 막말로 기분이 더러워진 이 떨거지 중에 떨거지, 예전 같으면 게을러서 상상도 못해봤을 추위 속의 허허벌판을 버스도 안 타고 걸어서 경찰서를 찾아간다. 경찰이라면 그 이름조차도 부르기를 꺼려하는 이 삼류인생 잔뜩 쫄아서 이것저것 되는대로 변명(?)을 해대는데, 먹고살기 바빠서 마누라가 병이 든 줄도 몰랐다는 둥, 그런데 이게 뭐냐?

"됐습니다. 이제 끝났어요."

경찰관이 그런다. 절차상의 문제가 끝났다고, 그러니 그만 돌아가도 된다고 한다. 경찰관의 그 한 마디에 갑자기 머릿속이 뒤집혀져 버린 삼류인생, 끝나다니, 뭐가 끝나? 아니 사람이 죽었는데, 다른 일도 아니고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이렇게 간단해. 뭐가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버린단 말야.

눈물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인가. 그 보석 같은 것, 보석 중의 보석, 아내 아닌 아내, 죽은 뒤에서야 얼굴을 처음으로 보게 되는 여자, 그 여자의 유해나마 품에 꼭 끌어안고 고향을 찾아가려 하는데, 배 한 척 살 돈은 아직도 벌지 못했지만 손 깨긋이 씻고 고향으로 가고자 하는데, 그러나 이놈의 사회는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같이 타락해야 한다고, 타락이 싫으면 같이 죽어야 한다고, 사회는 요구한다.

여기서 더 해야 하나? 그만 하자. 여기서 끝내자. 이런 이야기, 여기서 더 나가면 청승스러워진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 더 하자. 인간 심성의 저 깊은 곳을, 그리고 인간 세상의 저 얄팍하고 너절한 것들을 이만큼이나 소박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그려낸 영화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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