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해결하려면 알려야”

[인터뷰] 하얀리본운동본부 공동의장 마이클 카프만

검토 완료

김상진(limbus)등록 2003.11.26 19:26

ⓒ 우먼타임스 김희수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을 거부한다'는 뜻의 하얀리본운동을 캐나다에서 처음 제안했던 주창자이자 하얀리본운동본부의 공동의장인 마이클 카프만이 지난 11월 19일 한국을 방문했다.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11월 25∼12월 10일)을 맞아 한국에서 ‘하얀리본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딸사랑아버지모임’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숙명여대에서 만났다.

하얀리본운동을 계기로 평범한 대학교수에서 성차별적 농담, 성희롱, 가정폭력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폭력을 추방하는 ‘폭력추방대사’로 변신한 마이클 카프만은 책과 강연, 기고를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시키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마이클 카프만은 “하얀리본운동이 ‘폭력성의 죽음과 평화’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서양에서 흰색은 ‘평화’를 상징하고 동양에서 흰색은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모양이나 색상이 조금씩 다른데 한국의 경우 작은 흰색 리본이 ‘상장(喪章)’처럼 보여 크기를 키웠다.

“한국의 가정폭력이 심각하다고 들었다”며 말문을 연 그는 “사람을 살짝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폭력이며 그런 폭력이 결혼제도 속에 가려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가정폭력을 해결하려면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을 당연시하고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어떤 폭력이든 다른 사람에게 알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최근 국내에서 벌어진 가정폭력 피해자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을 두고 법원이 당연히 ‘자기방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육아참여 남성이 더 행복”

ⓒ 우먼타임스 김희수

건축가인 아내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카프만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를 지닌 인간이라고 강조한다.

“가사를 똑같이 공동 분담하고 육아에 참여하는 남성이 훨씬 행복하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가정 내에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가사를 분담하면 여성은 물론 남성이 더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마이클 카프만은 자신도 아내보다 요리를 더 잘하며 열세 살 된 딸과 함께 음식 만들기를 즐긴다고 한다. 그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가 우울증 지수가 낮다”며 한국의 아버지들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조언한다.

그는 또 “하얀리본운동은 불과 세 사람이 시작했지만 지금 전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운동이 되었다. 남성이 여성 위에 군림하는 힘을 포기하고 자신이 가진 사회적 힘을 여성과 나눌 때 세계는 더 행복해진다”고 말한다.

마이클 카프만은 스스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운동의 적극적인 지지자라고 말한다. 하얀리본운동이 여성운동을 후원하기 위한 기금 모금, 가부장성을 타파하기 위한 교육활동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이클 카프만은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정부기금을 받지 않고 순수한 모금으로 진행해왔다. 여성운동단체에 돌아갈 정부기금을 나눠 갖지 않기 위한 의미였다. 개인, 기업, 무역협회 등 민간의 기금을 통해 재정을 확보한 하얀리본운동본부는 성폭력센터, 여성피난처, 가정폭력 예방교육 등 여성운동단체를 후원하는 기금운동을 벌일 만큼 커졌다. 각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정부 단체의 협조와 지원을 받기도 하는데, 스페인 같은 경우 시에서 직접 이 캠페인을 주관하고 있다.

하얀리본운동은…
89년 加여대생 학살사건 계기… 30개국 전파

1989년 12월 6일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공과대학 여학생 14명이 여성혐오주의자들의 반자동소총에 학살되었다. 이후 매년 캐나다에서는 이에 대한 추모행사가 개최되었고, 1991년에 열린 학살추모일에 마이클 카프만과 그의 두 친구는 ‘여성에 대한 어떤 폭력도 행사하지 않고 침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가슴에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 리본을 달았다.

이를 계기로 하얀리본운동은 남성이 중심이 된 여성운동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가 현재 캐나다, 스페인, 미국, 브라질, 중국, 노르웨이, 남아프리카, 캄보디아 등 전세계 30개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하얀리본운동본부는 노조, 직장, 학교를 중심으로 99년 UN이 정한 ‘세계여성폭력추방주간’에 전세계 남성들이 이 리본을 착용하고 폭력을 추방하자고 선언했다.

브라질에서는 축구복을 입고 하얀 리본을 단 이들이 ‘우리 팀이 되라’며 폭력 거부 선언의 동참을 호소하고 중국에서는 흰 리본을 단 유명 남녀배우가 손을 뻗어 ‘STOP’ 사인을 그리며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경우 ‘아버지의 날’에 집중 캠페인을 벌이는데 ‘좋은 아버지가 되자’며 남성을 격려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 우먼타임스 송옥진기자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 근절이라는 의미로 시작한 하얀리본운동은 10년 동안 단순한 캠페인을 넘어 교육을 통해 양성평등을 가르치고 정부가 여성을 배려한 정책을 만들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학교와 경찰을 대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게 만들었다.

“여성은 우리의 후원을 받기에 합당한 존재다. 변화를 꿈꾸는 여성들은 차별당하는 것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남성들도 자각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여성뿐 아니라 힘있는 남성의 폭력에 시달리는 다른 남성에게도 중요한 변화”라고 말한다.

여성배려 정책 만들도록 압력

마이클 카프만은 한국 방문 중 지난 19일에는 건국대에서, 20일에는 숙명여대에서 하얀리본운동에 대한 강연을 펼쳤다.

그는 “건국대에서 강연하는 동안 학생들에게서 가부장성을 ‘덜’ 발견하게 되었다”면서 “학생들은 진지했으며 남성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도 ‘여성의 동등함’을 인정하는 세대가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그는 “여성과 남성은 똑같은 권리를 가졌는데도 권력을 가진 남성이 더 행복하고 여성은 학대를 당하고 있다. 이러한 불공정을 해결하기 위해 남녀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침묵하는 한 폭력은 결코 근절되지 않으며 남성들의 착한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송옥진 기자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