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

억울한 아내

검토 완료

박종인(boshing)등록 2003.09.30 09:02
결혼한 후에 몸에 변화가 생겼다. 시나브로 배가 나오는 것이다. 이는 아내도 마찬가지다.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 인사치레로 건네는 인사말이 있다. 결혼 전에는 '좋은 사람 있어요?'라고 묻더니, 결혼 후에는 '좋은 소식 있어요?'라며 인사말을 한다. 좋은 소리도 자주 들으면 물리는 법, 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만 아내는 신경이 꽤 쓰이는가 보다.

두 달 전부터 아내는 산부인과에 다닌다. 산부인과는 아이를 가진 임산모들만 다니는 곳이 아니라 아이를 가지려는 예비임산모들도 드나드는 곳이다. 아내는 배란일에 맞춰 관계를 가지면 아이가 들어설 확률이 높다기에 그 즈음에 날짜를 받으러 산부인과를 찾았다.

몸에 달라붙은 니트옷에 외투만 걸친 간편한 차림으로 산부인과를 찾은 아내는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옆에는 이제 갓 아이를 가진 듯한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약간은 들뜬 표정으로 태어날 아이에 대한 얘기를 소곤거리고 있었다.

아내는 그 부부의 말소리를 부럼 반 시샘 반으로 들으며 보고있던 여성지를 신경질적으로 넘겼다. 그 바람에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지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내는 아무 생각 없이 지갑을 주우려고 천천히 몸을 굽혔다. 자리가 옹색한데다 의자에 앉은 채로 몸을 굽히니 배가 접혀져서 동작이 굼뜨게 보였다. 이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옆자리의 산모는 부러운 듯 남편에게 속삭였다.

"여보, 몇 달 지나면 나도 저처럼 배가 부르겠지?"

-종이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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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굼뜨다 : 동작이 몹시 느리다.
* 꽤 : 보통보다 조금 더한 정도로. 어지간히. 상당히. 제법.
* 물리다 : (어떤 일이) 반복되어 싫증이 나다
* 소곤거리다 : 작은 목소리로 연하여 가만히 말하다. 소곤대다.
* 시나브로 :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조금씩
* 옹색 : 장소가 비좁다
* 인사치레 : 성의 없이 겉으로만 차리는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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