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엽이 줘야 할 홈런을 왜 엄한 애에게!"

이승엽 홈런포 침묵 속, 광주팬들 응원

검토 완료

강이종행/김진석(kingsx69)등록 2003.09.29 20:18

더블헤더 1차전 이승엽 선수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다짐을 하고 있다 ⓒ 김진석

"홈런왕! 이승엽 광주에서 일내뿌라"

광주 무등 경기장 3루측 관중석에 걸린 현수막 문구다. 24일 기아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스의 경기가 열렸던 광주 무등경기장을 찾은 모든 팬들의 관심은 역시 56호 아시아 홈런 신기록 달성 여부에 쏠려 있었다. 팬들은 응원 팀에 관계없이 이 선수가 타격에 설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와 함성으로 이 선수를 격려했다.

전날까지 54개의 홈런을 기록한 이 선수는 한 개의 홈런을 더 치면 자신이 세운 우리나라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고, 여기에 하나만 더 보태면 오사다하루(왕정치, 일본 프로야구 다이에 감독), 터피 로즈, 알렉스 카브레라 등 3명의 선수가 기록한 아시아 신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전날 경기 마지막 타석에서 안타를 기록해 신기록을 기대케 했던 이 선수는 경기 전 "전 날 광주 팬들이 응원 해줘 너무 고마웠다"며 "컨디션은 좋고 낮 경기는 편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있을 것"고 말했다.

하지만 총 5방의 홈런이 계속해서 터진 연속경기였지만 이 선수는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타이거즈 투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투수들은 몸쪽과 바깥쪽을 번갈아가는 코너워크로 이 선수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 선수는 다만 좋지 못한 공에 욕심부리지 않고 기다리며 볼넷을 골라내 광주 구장을 찾은 팬들의 박수를 갈채를 받았다.

"너무 피하는 거 아냐?"

제 1경기는 그야말로 좋은 공을 주지 않는 투수들과 이승엽 선수간의 기싸움이었다. 세 번째 타석까지 이 선수는 모두 볼넷을 골라 나가야만 했다.

벤치에 앉아 경기장을 바라보고 있는 이승엽 선수. 결국 이 날 55호 홈런은 나오지 않았다 ⓒ 김진석

첫 번째 타석과 세 번째 타석에서 라이온스의 3번타자로 나온 이 선수는 투수들이 바깥쪽 최대한 공을 빼며 유인구를 던지는 가운데 잘 참아냈고, 두 번째 타석에서는 공 4개가 모두 바깥쪽으로 흘러 1루로 걸어나가야만 했다.

네 번째 타석에서 좌완 오철민 투수는 이 선수를 상대로 정면 승부를 걸었고 이 선수는 2구째를 통타했지만 중견수 직선타로 아웃되고 말았다. 9회초 다시 한번 타격 기회가 올 수 있었으나 바로 앞 타석에서 이닝이 끝나는 바람에 더 이상 방망이를 휘두르지 못했다.

제 1경기는 난타전을 벌인 끝에 6대 6 무승부로 승부를 짓지 못했다. 타이거즈의 마지막 공격이 끝난 뒤, 이 선수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덕아웃으로 들어갔다.

경기 도중 타이거즈 투수들이 던진 공이 연속해서 볼을 기록하자 관중석에서는 "너무 피하는 거 아냐"라는 짜증 섞인 외침들이 나왔지만 이 선수의 홈런을 볼 수는 없었다.

이날 경기 시작 전 타이거즈 조계현 투수 코치는 "일부러 공을 빼거나 피하지는 말라고 투수들에게 주문을 한다"며 "하지만 투수들 입장에서 기록을 세우는 홈런을 맞는다면 기분 좋아할 사람이 어딨나"라고 의도적으로 이 선수를 피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하지만 타이거즈 입장에서 2위 싸움을 벌이고 있는 라이온스와의 경기에서 신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투수들도 이 선수를 피한다기 보다 신중하게 던진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분위기다. 이날 경기에서도 타이거트 투수들은 실투를 하지 않았다. 이는 이 선수의 경기 뒤 인터뷰에서도 드러났다. 이 선수는 "투수들의 실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치기 어려웠다"며 "이런 공이라면 홈런을 절대 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사실 이전 경기들에서도 이 선수는 평균 2개 여의 볼넷을 얻었다.

경기 뒤, KBS 하일성 야구 해설위원은 "볼넷 3개 중 2개는 비슷한 유인구를 투수들이 던졌는데 모두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승엽 선수가)속지 않았다"며 "바로 그게 이 선수의 훌륭한 점"이라고 이 선수를 치켜세웠다.

ⓒ 김진석


이 날 관중은 개막식 이후 최대 관중수인 만천여명이 모였다 ⓒ 김진석



정면승부. 하지만…

11,257명의 관중이 경기장을 찾아 개막전 이후 최고 관중을 기록한 제 2경기에서 역시 이승엽 선수의 홈런포는 터지지 않았다. 제 1경기와 다르게 타이거즈 투수들은 이 선수에게 유인구를 던지기 보다 코너워크를 감안한 정면승부를 택한 듯 했고 이 선수도 이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타이거즈 선발 이원식 선수와의 첫 번째 타석, 1,2구를 모두 볼을 고른 이 선수는 3구 파울, 4구 헛스윙을 기록했다. 5구째 바깥으로 빠지는 볼을 잘 고른 이 선수는 한번 타석에서 벗어나 숨을 골랐지만 결국은 바깥쪽으로 흐르는 골에 헛스윙 삼진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2대 3으로 라이온스가 끌려가고 있던 가운데 오른 3회초 두 번째 타석은 제 1경기에서 유일하게 아웃을 당했던 오철민 선수와의 만남. 1번 박한이 선수의 홈런이 터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 선수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지 광주 팬들은 "이승엽 하나 날려라. 파이팅!", "날려라! (홈런을) 승엽이에게 줘야지 왜 엄한 애(박한이 선수)한테 줘!"라고 외치는 등 이 선수를 격려했다. 하지만 역시 좌익수 뜬공으로 아웃.

이 선수는 세 번째 타석에서 역시 평범한 좌익수 뜬 공을 쳤지만 유격수 홍세완 선수가 공을 놓치는 바람에 2루까지 진루했다. 이어진 마해영 선수의 중겨수 앞 안타로 이 선수는 득점을 올렸다. 3대 4로 추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셈이다.

마지막 8회에도 이 선수는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이 선수는 신용운 투수와의 대결에서 2구째 힘차게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공은 1루수 장성호 선수에게 잡히고 말았다. 1루수 땅볼 아웃.

이렇게 해서 이승엽 선수의 홈런 기록은 내일로 미뤄지게 됐다. 다만 이날 라이온스가 광주구장 5연패를 벗어난 것에서 위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라이온스는 타이거즈의 마지막 9회발 1사 2루의 반격을 뿌리치고 5:4 승리를 거뒀다.

이 선수는 내일(25일) 타이거즈와의 광주 원정경기를 포함 7경기를 남겨놓고 있다.

한편 홈런 52개로 이 선수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현대 유니콘스 심정수(28) 선수도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기록하지 못했다.
"56호 공 주우면 떼부자 되부러"
첫 번째 관중부터 라이온즈 팬까지, 무등 경기장을 찾은 팬들

▲ '야구장에 왠 잠자리 채'. 이승엽 선수의 홈런 볼을 잡기위해 잠자리 채를 손보고 있다
ⓒ김진석

라이온즈 이승엽 선수의 아시아 신기록인 56호 홈런 달성이 예상됐던 24일 타이거스와 라이온즈 경기에는 외야부터 관중이 차는 일종의 '이승엽 특수'를 보였다. 바로 이 선수의 신기록 홈런공을 잡기위해서다. 일부 팬들은 글러브를 끼고 있었고 잠자리채를 들고 있기도 했다.

잠자리채를 든 채 위로 공을 머리 던지며 받는 연습까지 했던 윤형보(35)씨는 "외야에서 이승엽 선수 홈런공을 잡기 위해 글러브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 재미삼아 나도 가지고 왔다"며 "이 선수가 연속경기에 강하기 때문에 오늘 적어도 하나이상의 홈런을 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기 시작 전 2일동안 휴가를 받고 서울에서 왔다는 윤씨는 "라이온스와 이 선수를 응원하는 팬들의 입장에서는 "시즌최다 홈런기록은 55호가 더 중요하다. 그래야 56호 홈런도 있을 것 아닌가"라며 "이 선수가 부담을 털었으면 하는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 선수를 곁을 떠나지 않는 취재진들을 가리키며 "저렇게 선수에게 부담감을 주면 안된다"고 비난한 뒤, "평소에는 열 댓명 정도 보이던 기자들이 지난 대구 경기에서는 100여명이 넘었다"고 지적했다.

거의 매 경기 타이거스 경기를 찾는다는 김아무개(36)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있어야 한다"며 "이 선수가 광주에서 신기록을 쳐서 포상금으로 몇 백만원 벌고 경기는 이기면 되불재"라고 웃었다. 한 여성 팬은 "홈런공 주우면 떼부자 되부러"라며 "내가 그 주인공이었음 좋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타이거스 팬들은 이 선수를 피해가는 투수들을 보며 "맞대결 해야!"라고 소리치기도 했고 대부분의 팬들은 이 선수의 기록 갱신을 바란다고 밝혔다.

연속경기로 치러진 이날 경기에는 시작 3시간 반 전인 오전 11시 30분에 첫 관중이 광주 무등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경기를 위해 서울에서 왔다는 김경석(43)씨는 "타이거스를 응원하러 왔다. 하지만 이승엽 선수의 홈런 기록이 예상되는 경기를 보고 싶었다"며 "이 선수는 몰아치기를 잘 하는 선수라 오늘 신기록을 달성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어 김씨는 홈런왕 경쟁을 심정수 선수와 비교를 하며 "이 선수가 아무래도 심 선수에 비새 잘 치는 것 같다. 이유는 경험이 더 많은 것 같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 강이종행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