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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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amie72)등록 2003.07.02 09:23
옛날 영화 <사랑하는 사람아>(?)를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김민희가 남자 아이로 나와서 정윤희와 바닷가에서 살아가는 내용이다. 어릴 때 이 영화 보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그 남자의 아들을 혼자 키우는 여자 이야기다. 사랑하던 남자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문제는 단 하나, 아이가 없다. 그것도 아들이. 어느 날 자기 아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단지 자기 자식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가봤을 테고 눈물도 흘렸으리라. 단지 그 정도였으리라.

그런데 할머니는 다르다. 꼭 그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난 그것을 호주제와 제사의 영향으로 본다. 여기서 남아선호가 시작된다. 만약 지금 며느리가 낳은 아들이 있어도 그렇게 악착같이 아들을 데려왔을까? 아닐 것이다.

요즘 드라마 몇 개는 이 <사랑하는 사람아>와 흡사한 양상이다. KBS의 '아내'는 남편이 교통 사고를 당해 7년 동안 기억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남자 이야기다. 이 남자에게는 원래 딸이 하나 있었다. 7년 동안 보살펴 준 제2의 아내와의 사이에는 아들이 있다. 이 남편은 그저 아들이니까, 자식이니까 보고 싶어할 수도 있지만 할머니는 왜 자기 손자가 다른 집에서 커야 되냐고, 그래야 자기 아들이 그 여자 생각 안하고 살 수 있다고 그 손자를 데려 오려고 애쓴다.

역시 KBS의 '노란 손수건'은 이태란이 옛날 남자의 아들을 낳았다. 옛날 남자는 부인이 아기를 낳지 못해서 딸을 입양했다. 옛날 남자의 아버지는 입양이 못마땅하다. 여기서는 할머니가 손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손자를 찾을 모양이다. 아직 옛날 남자나 할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극의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양상이다.

MBC는 완전히 '사랑하는 사람아' 복사판 같다. 배종옥은 버림 받고 아들을 낳았고, 조민기는 다시 결혼을 했는데 아직 아기가 없다. 역시 할머니는 자기 손자가 태어나 자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손자를 만나고 싶어하고 데려오고 싶어한다.

단순히 할머니가 손자를 자기 새끼니까 만나고 싶어하고 아낀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뭘까. 왜 헤어진 여자들이 헤어진 뒤에 낳는 아기는 아들인지, 딸을 낳는 드라마는 왜 없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할머니가 손녀를 데려가겠다고 법정 싸움을 한다거니 치떨리게 찾아오는 읽은 거의 없기 때문에 딸을 낳으면 드라마 구성이 설득력을 잃기 때문인거 같다.

이 드라마들은 내용상 비슷하다. 대를 이어야겠는데 누구 자식인지도 모르는 애 데려다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니 입양은 싫고, 손녀가 있거나 아예 자식이 없는 지금의 며느리에게서는 손자를 얻기가 힘들고, 그런데 (버렸든, 스스로 떨어져 나갔든) 자기 핏줄이 반이라도 섞인 아이가, 그것도 손자가(이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있다. 어찌 찾지 않고 가만히 있으랴.

아들이어야 한다. 피가 반이라도 섞여 있어야 한다. 그 아이가 누군가의 삶의 희망이라고 해도 데려와야 한다. 데려올 수 없다면 빼앗기라도 해야 된다. 이것이 공통점이다.

이들 드라마는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호주제에서 파생되어 나온 남아선호 사상을 담고 있다. 언제쯤 눈물 바람을 일으키는 이런 드라마가 없어지려나. 호주제가 없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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