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방송과 '지랄'하는 세입자

케이블방송간의 경쟁이 일요일 저녁의 평화를 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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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구(cedaskr)등록 2003.05.29 14:23
얼마 전 곤혹스러운 경험을 했다. 일요일 저녁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어 누구냐고 물었더니 아무 대답이 없어 누군가 해서 문을 열었더니 케이블 유선 업체에서 나왔단다. 사은 행사 기간이라나 뭐라나 해서 지금 가입하면 1년 시청료 6,600원으로 해준다고 했다.

평소 월 4,400원 내고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쪽은 현재 내가 시청하고 있는 유선방송이 아니라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업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소 유선방송은 구내 단일 사업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경쟁 업체가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그리고 지하철 근처에 있는 케이블 방송 건물이 실은 지금까지 시청해 오던 방송이 아니라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되었다. 사정이야 어떻든 간에 싼 가격에 비슷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합리적인 결정이라 생각되어 순식간에 그동안의 관행을 바꾸기로 했다.

동네 사람들이 저녁을 먹고 그 다음날부터 고단한 일상을 시작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 시점에 소란을 시작되었다. 주인이 살고 있는 위층에서는 낮에 작업하라며 짜증을 부렸고 가설 직원은 금방 끝난다며 작업을 강행했다. 그러나 작업이 간단하지는 않았나 보다. 선을 새로 깔고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30여분 정도 걸렸고, 주인 내외는 그 직원을 상대로 작업을 말렸다.

그런데 문제는 이 주인 내외가 지금까지 동네의 평화를 적잖이 파괴해 왔다는 사실이다. 목소리 큰 거야 어쩔 수 없다 해도(이 식구들은 하나같이 목소리가 크다. 동네는 그 가족들의 플레이그라운드!) 자기 재산과 관련해서는 어떤 불리에도 비타협적인 자세를 보여 종종 이웃과 마찰을 빚어 왔다. 물론 세입자인 우리에게도 주인 이상의 간섭을 자행해서 초기에는 짜증스럽기도 했다.

이날 작업 내내 불평을 늘어놓아서 내 입장에서는 동네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일요일 저녁의 평화를 깨 놓은 주범이 나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싼값으로 비슷한 물건을 구매하는 건 순전히 개인의 자유에 속하고 다른 이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것도 없는데, 주인 내외는 그런 문제에까지 불평을 늘어놓는다.

여하튼 적잖은 소란 속에서 이날 작업은 끝났다. 기존 방송 해지도 그쪽에서 처리해 준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방송 채널을 확인해 보니 중복 방송도 많고 평소 동생이 애청하던 방송도 나오지 않는 반편이 방송이었다. 동생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4,400원을 500원대로 낮춘 것은 현명한 선택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후 일주일 뒤에 기존 방송 업체에서 직원이 찾아왔다. 이제는 아예 1년 시청료를 무료로 해주겠다면서 원상 복귀할 것을 요구했다. 바꾼 뒤로 화질은 깨끗하지만 방송 채널 수도 적고, 서초구 사업자가 관악구 사업자를 침범해 사업 확장을 노렸다는 사실을 고약하게 생각했던 터라 내심 예전 방송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경쟁이 경쟁을 불러 드디어는 제살깎아먹기에 이르렀구나 싶었다.

그러마고 했다. 기존 선이 있으니까 간단한 작업만으로 원상 복귀가 가능하단다. 그러마 했는데 이게 화근을 불렀다. 작업을 지켜보고 있던 주인 아주머니 "뭔 노무 케이블을 또 까냐"며 이젠 나를 욕하는 것이다. "지랄을 한다" 어쩐다 등등. 내심 변덕 아닌 변덕을 부린 건 사실이지만 세입자한테 "지랄" 운운할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이게 제 집 없는 설움이니 싶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가설 직원까지도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살기 힘들겠어요"라며 동정을 보낸다. 나도 그 말에 공감을 표했다.

자기에게 큰 불편이 가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세입자를 무시하여도 좋은가 싶었다. 처음 이사할 때는 집이 마음에 들었는데, 이사할 때는 집 이상으로 주인이 좋아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 이건 초보 무주택자가 염두에 둬야 할 철칙이다. 절대로 집 좋다고 덜렁 계약하지 말고 주인과 최소 30분 이상 주인과 얘기를 나눠 보는 건 필수!

여하튼 원상 복귀는 이뤄졌는데 케이블 업자들의 농간과 주인의 험구 때문에 마음은 평화롭지 못하다. 분란의 일단은 사업 구역을 침범한 그 업자에게 있는 것같다. 특별한 설명도 없이 무조건 싸게 볼 수 있다는 것만 부각시켜서 소비자를 끌어들이는 책략이 밉다. 나 역시 싸다고 잘 따져 보지도 않고 선택한 것 역시 잘못이라면 잘못이지만 왠지 내가 말려들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당국이 어딘지는 모르지만 업체들의 위법이 있다면 사전에 분란의 소지를 차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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