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장관에게 고함

'범죄자'가 국가유공자가 되는 나라?

검토 완료

서석원(dreamsun)등록 2003.05.29 15:19
작년 말부터 해서 이른바 '군의문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의문사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고, 근원적인 문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한 군의문사 유가족의 억울한 사연을 아래에 옮깁니다.

총기사고로 이미 사망했으나, 그 사고로 인해 법적으로 입건 상태에 있는 사람이 순직처리되어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는데, 수사결과가 공식적으로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 당사자의 순직여부가 가려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더욱이 그 순직처리는 가해와 피해의 사실관계가 분명히 가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다는 수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이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방장관에게 고합니다. 과연 이같은 일이 가능한 것인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지 책임있는 해명을 기다립니다.

일병 박성식은 2002년 7월 3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육군 23사단 58연대 소속으로 복무하고 있었으며, 사고 당시 불과 22살의 나이였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은 우리 유가족에게 헌병대는 사건 정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해안초소 경계근무 도중, 부사수였던 성식이가 사수였던 상병 최수인을 K-2 소총으로 먼저 쏘아 죽이고 나서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말입니다.
멀쩡히 군대에 갔던 성식이가 갑자기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린 것만도 기가 찰 노릇인데, 살인을 저지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듯한 원인 하나 대지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만 들먹이는 헌병대의 사건 정황 설명 역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유가족은 천주교인권위원회와 군가협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10월 9일 우리 유가족은 두 단체와 함께 다시 부대를 방문했습니다.
부대측으로부터 사고 경위를 청취했고, 사고현장인 해안초소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성식이와 같이 생활하던 병사들과 지휘관을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과 개인 면담을 했습니다.
10월 10일에는 부검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1) 성식이의 양쪽 정강이에서는 일명 조인트 자국으로 추정되는 피하출혈이 발견되었고, 가슴 부위에서는 다발적인 피하출혈이 폭넓게 발견되었습니다.
2) 한편 상병 최수인은 후임병을 상대로 상습적인 구타를 해 온 문제 사병이었습니다. 평소 후임병에 대한 구타와 괴롭힘이 심했으며, 주로 경계근무를 서는 초소 안에서 그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진술이 나왔습니다. 더구나 그는 사고 당시 입창 대기 상태에 있었으며, 그 이전에 구타 사고 전력으로 성식이의 소대로 전출되어 온 터였습니다. 사병들의 진술에 의하면, 당일 오침중이던 성식이는 근무 순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상병 최수인의 지목을 받고 경계근무를 나갔습니다.
3) 상병 최수인의 경우 조준사격에 의한 총상이 아니었습니다. 오른쪽 겨드랑이, 왼쪽 손목, 왼쪽 옆구리 윗 부분 등 총 3군데에 사입구가 형성돼 있습니다. 또한 사고가 발생했다는 초소는 폭이 약 2m 정도되는 공간이었습니다. 건장한 남자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으면 꽉 차는 협소한 공간.

그 안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2003년 1월 10일 우리 유가족은 다시 부대를 방문했습니다.
현병대 수사기록이 사단법무부로 넘어갔고 최종수사발표 시점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사는 여전히 진행중이었습니다.
성식이 사건 수사기록에는 상병 최수인과 일병 박성식 모두 입건 상태라고 돼 있었습니다. 둘 다 '범죄자'라는 얘기였습니다. 상병 최수인의 구타와 가혹행위에 견디다 못한 성식이가 일을 저지른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던 2월 27일 수요일,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우연히 들은 바를 직접 확인해 본 결과, 상병 최수인이 순직처리가 됐고, 현재 국립묘지 현충원으로 옮겨져 안장만 남기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부대측의 최종수사결과를 듣고, 납득할 수 없을 경우 재수사를 비롯한 다음 조치를 강구하려고 하던 우리 유가족에게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소식이었습니다.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더욱이 상병 최수인은 본 사건과 관련해서 입건 상태에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와 관련해서 부대측으로부터 사전에 일언반구의 설명도 들은 바 없었습니다.
1월 10일 방문시에도 사단 법무참모는 아무런 얘기가 없었습니다.
그 사단 법무참모는 오늘(2월 27일), 이와 관련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헌병대에서 사망확인조서를 떼어줬고, 육군본부 전사상자처리위원회에서 그같은 결정을 내린 모양이라고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했습니다.
우리 유가족은 이같은 사태 앞에서 분노를 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이 그동안 우리를 기만해 왔다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유가족 앞에서는 수사가 진행중이라고 얘기해 놓고, 뒤로는 뒤통수 치는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로 변명을 늘어 놓는 모습을 대하고 보니,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져만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같은 일이 발생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이었는지 국방부장관의 책임있는 답변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성식이가 왜,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 납득할 수 있는 수사결과를 빠른 시일 내에 23사단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표를 하게 해 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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