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관한 짧은 이야기 (1)

- 오빠와 여동생의 엽기적인 가위바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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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선(paulus98)등록 2003.02.10 15:57
프로이드 심리학의 핵심적 개념 중의 하나가 '오이디프스 콤플렉스'다. 이에 대응할 동양적 단어가 '가부장적 질서'라는 낱말일 것이다. 프로이드가 말하는 서구적 '성(性)'적 억압의 개념이 동양에서는 '가부장적 질서' 속에 모조리 용해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호적제도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호적제도 논의의 핵심은 시대에 뒤떨어진 가부장적 질서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이다. 나와 피를 나누고, 호적 한 선 끝자락에 걸쳐 있어야 하고, 같은 주민등록에 등재되어야만 가족으로 인정하는 유교사상의 끝물에 선 나는, 엄격한 가부장적 질서만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살고 있는데...

우리 아들은 올해 12살이 되었다. 그 밑으로 5살 아래의 여동생이 있다. 어느 집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아마 우리 아들이 느껴야 할 사회적 억압과 고통의 출발은 5살 아래 여동생의 출현으로부터 일 것이다.

5년 터울의 둘째 아이는 대개가 피임의 실패가 주요인일터이고, 그 때문에 터울 넓은 아이의 출산을 두고, 칠칠치 못한 아내의 성생활 단도리를 주타깃으로 하는, 부부 사이에 책임소재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기도 했었다.

여동생 없이 혼자 커 온 5년의 세월이 어린 시절 우리 아들이 누린 인생 최대의 전성기일지도 모른다. 더불어 5년 아래 동생에 대한 양육의 일정 부분을 느닷없이 떠맡은 아들의 처지는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오누이 사이의 모든 분쟁의 결말은 어린 오빠가 두 어깨에 짊어져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 둘 사이에 큰 소리만 나면 아들을 달달 볶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곤 하는 아버지의 언어폭력에 적응해야 하기만 했다.

적자생존이라던가?
일방적으로 불평등한 공존이 지속되기를 수삼년, 아들은 어느새 동생과 억압적 아버지 사이에서 생존의 비법을 서서히 터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도 두 아이에게 방에 들어가 자라고 하면서, 오빠의 뒤통수에 동생과 다투면 혼난다는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집사람과 둘이서 할 일 없이 TV를 보는데 방안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신의 억울함을 미리 통고하듯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얘가 또 땡깡부려요."
어린 울 딸의 잠투정은 울 집안의 저녁 행사라, 아들은 그 이야기로 상황을 벗어나고자 한 모양이지만, 귀찮은 나는 습관적으로 한마디 던졌다.

"동생 괴롭히지 말아라."
잠시 후 방안이 조용해서 이상하다 싶어 살그머니 귀를 대어 보았다. 아무리 상황을 설명해 보아야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울 아들은, 아버지로부터의 이해는 포기하고 동생과 한창 타협하고 있었다.

동생 "오빠...나를 형님이라고 불러라.(울 딸은 잠투정 할 때면 아무한테나 반말한다.)"
오빠 "(엄청 어이없는 말투로) 내가 먼저 태어났는데 어떻게 니가 형님이니? 내가 형님이지."
동생 "아니야...내가 먼저 태어났어.(울 딸은 잠투정 할 때면 무조건 우긴다.)"
오빠 "나는 92년에 태어났고 너는 97년에 태어났으니까 내가 형님이야."
동생 "아니야...내가 97년이니까 형님이야."
오빠 "92년이 빠른 건데 어떻게 니가 형님이냐?"
동생 "그래도 내가 형님이야..."
오빠 "아빠한테 물어볼까?"
동생 "잉잉...(아직까지는 조그만 소리임)"
오빠 "(겁먹은 목소리) 그럼 우리 가위바위보로 하자."
동생 "좋아."

오빠와 동생이 심야에 가위바위보 하는 소리가 났고,

동생 " 내가 이겼지...나한테 형님이라고 해."
오빠 "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형님..."
문밖에서 듣고 있던 나는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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