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되면 자살한다"식 패배주의, 끝장내자

장애인이동권투쟁 영상보고서 <버스를 타자>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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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수(mayyou)등록 2002.11.25 10:38

철로를 점거하라! ⓒ 노들갤러리

영화 '오아시스'를 보러 극장에 갔다. 자막이 올라가면서 연인사이로 보이는 앞자리 남녀가 나누는 대화를 얼핏 듣고 울컥하는 심정이 되었다. 남자는 "내가 저렇게 되면 자살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극중 전신 뇌성마비를 앓는 한공주(문소리)를 일컫는 것이리라. 짜증과 화가 몰려왔다. 마음을 추스린 후에도 그 말이 머릿속에 자꾸 맴돌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도 저런 피학적 상상을 한 적은 없었는지. 그리고 그런 상상을 품는 코드가 많은 사람들 머리 속에 이미 잠재의식으로 내장돼 있는 것은 아닌지에까지 생각이 미치다 내 자신이 혐오스러워 고개를 설레 내젓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노동시장에서의 퇴출(취업한 경우도 대부분 단순직), 인간 관계의 종결, 심지어 마지막 안식처여야 할 가족의 냉대….

님비현상의 대상으로 장애인이 거론될 때는 중세의 마녀사냥을 보는 듯할 정도다. 잠재적 범죄자로, 땅값하락의 요인으로 낙인찍는 공안기관식, 복부인식 시선은 가공할 정도다.

발산역 참사에 이명박시장은 사과하라 ⓒ 장애인이동권연대

한마디로 장애인은 제로섬 게임의 패착자이다. 비장애인이었을 때 가졌던 사회적 지위와 권능 이 모든 것이 장애인이 되는 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동정과 시혜의 대상이 되버리기 십상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렇다. 어떤 사람도 한 순간의 불운한 실수로 '부양돼야 할 짐'으로 전락하는 현실. 끔찍하지 않은가.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노골적 차별의 광포함이 참혹하지 않은가.

이동수단이 없어 장애인 70%가 한 달에 5번도 집밖에 나오지 못한다는 기막힌 현실은 또 어떤가. 능력이 있어도 직장에 가지 못하고 합격을 해도 대학에 다니지 못하는, 그래서 모든 것을 체념하고 집에서 숨죽이며 지내야 하는 현실을.

암묵적으로 숨기고 있을 뿐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서 이 차별구조가 부당하지만 부단히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지는 않은가.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거야'라고 무수히 주문을 외우며….

이 어리석음의 반복과 순환, 그 친구가 '자살'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게 만든 끔찍한 현실에서 우리 안의 패배주의와 만나게 된다.

스스로를 죽이는, 스스로의 인간성을 훼손하는 이 미치광이 놀음을, 통절할 상황을 어떻게 끝장내야 할까.

이 몸서리쳐지는 영상 다큐를 보고 실감했다. 이동권 쟁취를 위한 싸움에서 그들이 얻은 것은 단순히 저상버스와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아님을, 부당하게 씌워진 굴레를 벗어 던지고 직접행동을 통해 파열음을 내며 기어이 자신들을 패배주의에서 탈출시킨 것임을 말이다.

그들은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웠지만 모든 잠재적 장애인인 우리 모두를 위한 기여를 한 것임을 훗날 장애인이 된 그 누군가는 절절히 깨닫게 되리라.

<버스를 타자>
장애인이동권연대 투쟁 영상보고서

독립 다큐 창작 집단인 '다큐인'이 화제가 됐던 '끝없는 투쟁-에바다'에 이어 만든 장애인이동권연대투쟁 영상보고서 '버스를 타자'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쟁취를 위한 싸움의 현장에서 그들의 함성과 분노를 그대로 담아 보는 이들의 윤리적 각성을 촉구한다.

작년 1월 오이도 리프트 참사에서 최근 발산역 리프트 추락사 사건까지 장애인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한다. 작품은 장애인들의 목소리로 이러한 처절한 상황을 보여준다.

'버스를 타자'에는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싸울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연이 곳곳에 드러난다. 국무총리실, 보건복지부, 건교부 등에 수업이 찾아가 면담을 신청했으나 실무자들은 하나같이 조만간 연락주겠다는 얘기뿐.

정부로부터 책임있는 이야기도 듣지 못한 채 푸대접만 받는 이들은 대국민 홍보를 위해 집단적으로 지하철을 탈 때도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과 구박을 받는다. "시민 불편을 가중시키지 말라" 는 것.
이에 그들은 "미안합니다. 바쁘신데 몇 분 더 늦게 만들어서요. 그런데 우리는 평생 그것보다 몇백배나 많은 불편을 느끼고 살고 있습니다"며 대답한다.

경찰들이 쇠사슬을 목에 걸고 버티고 있는 장애인을 짐승처럼 끌고 가는 장면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이밖에도 영상다큐 전반에서 이동권 투쟁과정에서 공권력이 얼마나 많은 폭력을 사용했는지를 보여준다.

다큐인은 이 영상보고서를 장애인의 권리를 외치다 산화한 고 최옥란 열사에게 바쳤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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