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광과 호주제, 학벌카스트에 분노하라

군대문제를 남녀대립으로 몰아서는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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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수(mayyou)등록 2002.10.01 19:22
이화여대 총학생회와 이화여대 커뮤니티인 이화이언 등 관련 사이트에 대한 일부 남성의 사이버 언어폭력 문제로 논쟁이 뜨겁다. 사태의 발단은 26일 이화여대‘사회봉사대축제’기간에 행사의 하나인 헌혈에 참여하기 위해 정몽준 의원이 이대에 방문한 와중에 일어났다.

같은 날 총학생회가‘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지지를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권지현 부총학생회장이 이곳을 지나치던 정몽준 의원과 기습적인 토론을 시도한 후였다.

이대총학생회 측에 따르면 권부총학생회장이 정 의원과 잠시 설전을 벌였고, 주장의 요지는 “군대의 존재로 전쟁이 일어난다. 전시에 여성은 남성들에 의해 폭력적으로 다뤄진다. 여성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지지는 그래서 온당하다”라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이 온라인을 통해 알려진 후 28일께부터 34대 프락시스 총학생회 홈페이지를 시작으로 이화이언 등의 이화여대 사이트에 수백개의 비난 도배글이 깔리기 시작했다. 글의 대부분은 비아냥과 성적 조롱에 관한 것이었으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수준의 성적 폭언도 상당수에 달했다.

무엇보다 도배글의 주된 내용은‘양심적 병역거부’의 주창자나 그 핵심적 논거들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여성들이 군대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있나?”라는 자격론에 대한 것이었다.

남녀간의 대립구도는 99년을 뜨겁게 달구던‘군가산점 폐지에 대한 헌법소원’을 둘러싼 논란에 이어 올해의 이슈로 등장한 셈이다.

(참고로 나는 남성이며 병장만기제대를 했다.)-꼭 이딴 식으로 자기 고백을 해야된다는 게 서글프다.

우선 나는 왜‘여성은 군대문제에 대해 의견을 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솔직히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자격을 누가 주는 건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어떤 사안에 대해 말할 자격이라는 것이 있기야 하겠다. (툭하면 비판적 언론인들한테 소송 거는 한나라당이‘언론자유’를 논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녀들이 군대에 간 남자들을 비난했나? 군대에 간 개개인의 퍼스낼러티를 부정했나? 군대 존재의 불가피성을 부인하고 군대폐지를 논했는가?

그들의 주장은 초보적 수준의 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라도 양심적 병역거부는 존중돼야 하고 그 방편으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게다가 이런 주장은 계속 되어 왔다. 왜 이런 주장에 누구보다 먼저 동조하고 지지한 참여연대 사이트는 조용한가? 왜 인권운동사랑방은 조용한가? 왜 유독 이대총학생회인가?

결국은 ‘이 문제에 관한 한 발언권이 없는 여성들이 설쳤다는 점’, 그리고 ‘이대가 했다’는 것이겠다. (이러한 경우는 또 있다. 한국인이지만 벽안의 눈을 가진 박노자 교수도 별로 성하지 않았다.)

우선 군대는 남성들의 전유물이고 기왕의 군대로 인한 고통과 영광도 다 남성의 것인지 먼저 따져보자.

얼마전 9?11테러이후 미국이 중심이 되어 수행한 아프간 대테러전쟁 이후, 아프간의 여성과 어린이의 참상을 다룬 KBS 일요스페셜은 전쟁의 광포함은 전투기계로 전장에 투입된 남성들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한 르포로 가감없이 전해주었다.

전시에 여성은 적군의 방패막이가 되어 내 남편 내 아들이 속한 아군의 초동공격에 유린당했고 적군의 긴장을 해소시키는 전쟁터의 아드레날린으로 전락해 집단윤간의 대상이 되었다. 또 전쟁이 끝나면 급격히 줄어든 남성의 노동력을 대신해 몸을 혹사하며 생활고와 대가족의 부양자로서의 무거운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 이는 전쟁이 초래하는 보편적 인간고이며, 결국 여성은 ‘징병을 피하는 행운’을 쥐고 있는 특권적 성(性)이 아님을 방증한다.

심지어 거창양민학살, 노근리양민학살 사건에서 드러나듯 자유와 광명을 찾아 줄 것으로 여겼던 맹방의 총칼 아래 짓밟힌 많은 사람들이 부녀자와 어린이, 노인들이었다.

태평양전쟁 당시 우리나라를 포함해 성노예가 되어 일본군의 노리개 역할을 강요받았던 아시아의 수많은 여성들은 전쟁의 참화를 아직도 견뎌내고 있지 않은가?

'전쟁'이 인간이 만든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임에 동의한다면, 그러한 ‘전쟁’의 도구인 ‘군대조직’이 갖는 반인도적 성격의 필연성을 감안한다면 이에 대한 공중토론은 언제나 가장 격렬해야 한다. 전쟁의 이득을 보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쟁과 군대의 폐해를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물론 여성도 그 반쪽이다.

그렇다면 왜 이대인가?

뜬금없지만 가부장제 얘기를 해야겠다. 가부장제는 권력과 금력, 사회적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는 더 없이 훌륭한 제도이다.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식솔(?)을 거느릴 충분한 능력을 소유해야 온전히 존중받는다. 반대로 남성의 무능력은 가장 큰 악덕으로 치부돼 끊임없이 존재의 열등함을 스스로에게 주입케 하고 아버지와 남편으로서의 자기존중감에 상처를 입힌다. 설령 가족이 냉소를 거둬도 자신에 대한 멸시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 가부장제 사회의 아버지고 남성이다.

우리사회의 경우 부분적으로는 호주제라는 외형적 제도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의 수혜자는 사회상층의 소수의 남성이다. 심리 성적(psychologic-sexually)으로 능력남에 대한 무능력남의 열등의식과 냉소, 자기기만은 배출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잠복돼 있다. 이런 전근대적 사회일수록 가장 심각한 개인적 고민들은 대부분 사회의 낡은 틀이 개인에게 강요함으로써
생긴 말썽이다. 많은 남성들이 치열한 실존적 고민을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가치관으로 대체한다.

그렇다면 그들 남성들에게 이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여기서 또 다른 고리가 하나 개입된다. 우리사회에 뿌리깊이 구조화된 학벌카스트 제도. 학벌카스트에 일단 편입하면 그 사람은 영원히 낙인찍힌다. 대통령과 대통령 후보조차도 고졸학력이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하는 잘난 대한민국 아닌가? 과거의 육사를 포함해 서울대, 연고대 학생들이 아니면 미팅도 안해 준다는 이화여대. “이화여대는 능력의 정점에 서 있는 남성들만이 차지할 수 있는 전유물이다” 이러한 ‘몰상식이 상식화’된 뒤틀림이 우리 사회 남성의 고집스런 이대 공격을 지속시키는 것은 아닌가?

비약이 있긴 하지만 나는 이런 정도가 이대총학생회의 선의에도 이대를 공격하는 남성들의 주된 심리가 아닌가 한다. 매우 비극적이다.
경험적으로 각인된 군대에 얽힌 강력한 인식과 정서들을 가진 남성들, 능력남이 되기 위한 분투, 상위계층구조에 편입되지 못한 대다수 남성들이 겪게 되는 식욕감퇴를 동반하는 냉소와 자기비하 이러한 것들.

군대가는 남자친구 보내고 훈련소 앞에서 서럽게 눈물 흘리는 여성들, 나중에 변심할 지라도 욕하지 말자. 개인의 잘못으로 환원하면, 남녀 간의 대립으로 치부하면 우리네 삶의 반쪽과의 진정한 대화는 영원히 소원할 뿐이다.

냉전과, 가부장제, 학벌카스트로 넓찍한 철밥통을 보장받는 한줌의 사람들만이 어깨 펴고 당당할 수 있는 이 엿같은 사회에 침이 라도 한번 더 뱉자.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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