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시절, 동아는 모든 것이었을까?

김성수의 친일행위를 정당화하는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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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원(buddhist21)등록 2002.04.04 16:20
민족의 염원을 대변한 인촌과 동아일보(?)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 아래서 교육, 언론, 산업분야의 민족 역량을 키워 독립을 준비한 선각자를 아십니까.

동아일보는 도산 안창호 선생도 아니랍니다. 백범 김구 선생도 아니랍니다. 설마하니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아니겠지요. 그럼 누구지. 동아일보는 민족독립의 선각자가 누구인가란 질문에 인촌 김성수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동아일보의 창간주인 김성수 말이다. 덧붙여 일본 제국주의 압제의 시대에 동아일보는 민족의 모든 것이었다고 뻔뻔스럽게 주장한다.

"고난의 시절, 동아(東亞)는 모든 것이었다"
-2002년 4월 1일자 동아일보 최정호 교수의 특별기고 '다시 人村과 東亞日報를 생각한다'-

동아일보는 지난 4월 1일 창간특집호에서 인촌 김성수를 조명한 특집기사를 두 면에 걸쳐 실었다. 그럼 동아일보의 기사를 빌려 인촌과 동아일보의 어마어마한 업적을 조금만 살펴보자.

"1920년 동아일보를 창간해 억눌린 민족의 염원을 대변하기 시작했다."
"인촌은 특히 동아일보를 창간하면서 '민족의 표현기관임을 자임함'으로써 우리 겨레의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 당시 국민들 사이에는 민족의식 자체가 희박했다는 점에 비추어 인촌의 선각자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아일보가 창간 이후 1940년 8월 강제 폐간될 때까지 20년 동안 정간 4회, 발매금지 2000회 이상, 신문압수 89회, 기사삭제 연 2423회의 제재를 당했던 것도 '민족의 입'으로 일제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고초였다."
-2002년 4월 1일자 동아일보-

과연 그럴까. 인촌과 동아일보는 민족독립의 선각자였을까. 여기서 인촌이 1943년 매일신보에 직접 기고한 '대의에 죽을 때, 황민의 책무는 크다'는 글에서 그의 민족독립 정신을 알아보도록 하자.

"현재와 같은 세계적 신질서가 건설되는 시대에 있어서는 윤리적 방면이 일층 더 고조되어야 할 것은 제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평소부터 제군에게 자주 말하여 온 나의 생각을 제군의 출진(出陳)을 앞둔 오늘날 다시 말하고자 한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의무를 다하라'는데 그칠 것이다. 의무를 위해서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나는 늘 말하여 왔거니와, 지금이야말로 제군은 이 말을 현실에서 몸으로써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물론 제군은 말로 쉽사리 목숨을 바치라 운운하는 나나, 또 다른 선린들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심경에 있을 것을 나는 잘 안다. 어제 아침에도 제군을 모아놓고 교단 위에서 제군의 수많은 시선을 바라볼 때, 나는 다만 말로 표현키 어려운 엄숙한 감격을 느꼈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종사해 온 교육자의 양심에서 말한다. '제군아, 의무에 죽으라'고.
-1943년 11월 6일자 매일신보 '대의에 죽을 때, 황민의 책무는 크다' 중에서-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제국주의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반 민족독립의 선각자였던 그가 조선의 청년들을 '천황과 일본의 국익을 위해 죽으라'며 전쟁터로 내몰고 있다. 과연 조선의 독립에 관심이나 있었을까. 오히려 그가 자식 같은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며 했던 '교육자의 양심'이라는 말이 귀에 무척 거슬린다. 이런 그를 어떻게 민족독립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을까. 더불어 그가 창간한 신문인 동아일보가 과연 민족의 염원을 대변했을까 다시 묻게 된다.



만프레드 슈톨페 목사와 인촌

동아일보가 자화자찬 격으로 창간주인 인촌 김성수를 찬양으로 일관하는 건 그렇다고 해도 더욱 꼴불견은 울산대 최정호 교수의 특별기고이다. 최교수의 특별기고 '다시 人村의과 東亞日報를 생각한다'는 언론재벌에 종속된 한국 지식인들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지식인들은 언론재벌에 '돈'받고 글을 파는 노동행위가 무슨 큰 영광인줄 알겠지만 그들은 고용된 지식노동자일뿐이다.

최정호 교수는 기고에서 옛 동독 공산당 독재치하에서 반체제 인사를 보호하고 서방세계로 안전하게 이주케 한 '만프레드 슈톨페 목사'의 행적과 인촌의 친일행적을 동일시한다. 그는 슈톨페 목사가 반체제 인사들을 보호하고자 동독 집권당 간부들과도 빈번하고 더러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인촌도 일제와 그러했을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또한 최교수는 슈톨페 목사의 동독 공산당과 친밀했던 행적이 통일 이후 폭로돼 비난이 쏟아졌을 때 서독 사회민주당 소속의 정치인 도흐나니 박사가 그를 변호했다고 애써 강조한다. 동독 공산당 치하에서 집권당의 요인들과 어느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었더라면 슈톨페 목사가 어떻게 반체제 인사들을 비호하고 그들의 서독행을 도울 수 있었겠느냐고 되묻는다. 더구나 동독 공산당과 犬猿之間(견원지간)인 사회민주당 정치인도 슈톨페 목사를 옹호하는데, 왜 한국사회는 인촌을 친일파로 매도만 하고 옹호하는 목소리조차 없냐고 훈계하고 싶어한다.

덧붙여 인촌의 친일행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치 독일 군사정보국 책임자로 있던 카나리스 제독의 예를 빌려온다. 최교수는 카나리스 제독이 긴요하게 구출해야 될 유대인 과학자나 예술가들을 국외로 탈출시킬 수 있었던 것도 그에 대한 나치 집권층의 신뢰가 구축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더구나 카나리스 제독의 반히틀러 음모가 드러나 처형되었으니 망정이지 제독이 무사히 살았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후세 사람들에게 나치의 거물로 매도당했을 것이라고 협박한다.

최교수의 말대로라면 김성수는 일제에 의해 처형됐어야 했다. 그래야 인촌의 독립운동이 망각의 역사가 아닌 실존의 역사가 될 수 있고, 그래야 아무것도 모르는 요즘 사람들이 인촌을 친일파라고 매도 못할 것 아니겠는가.

최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슈톨페 목사의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라고.
인촌 김성수의 동아일보가 일제치하에서 민족언어로 신문을 발행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슈톨페 목사의 행동과 같다고 말한다. 더구나 숨통을 죄어오는 '사상통제'와 '언론통제'의 '현실적 제약(일제치하라는)' 아래 기댈 곳 없는 식민지 동포에게 매일 신문을 제작 보급한다는 건 위대한 애국행위였다고 애써 강변한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면 묻는다. "정말 그런가?"


언론개혁과 친일청산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

최교수가 그 어떤 언변으로 인촌의 친일행적을 합리화하고 미화시키더라도 그는 민족의 법정엔 사야할 죄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는 국외에서 항일투쟁을 했던 독립지사들의 행적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투덜거린다. 그의 말을 빌려 들어보자.

"일제 35년의 식민통치사는 ... 이 겨레가 겪은 '국내'의 역사이다. 그것은 해외 독립투사들의 자랑스러운 광복의 역사이기에 앞서, 그 이상으로 힘없고 이름 없는 백성들이 당하고 ... 부끄러움을 견딘 수모와 수난의 역사였다. ... 광복을 맞아 해외 망명에서 화려하게 돌아온 독립투사들의 프로필은 크게 부각되고 그들의 업적은 대서특필되곤 하였으나 국내에서 당하고 짓밟히고 수모 받은 백성들의 '실존적'인 식민지 체험은 독립만세와 함께 기화(氣化)하여 하늘로 사라져버렸다."
-2002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최교수에 따르면 일제 침략의 역사는 '국내'의 역사인데 '국내'의 '실존적' 고통이 망각의 역사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실존적 괴로움을 망각하고 국외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항일투쟁만 독립운동인 것처럼 포장하느냐고 홀로 외친다. 그가 말하는 인촌 김성수는 이 실존적 고통 속에서 현실적 제약을 받아들이며 민족에서 봉사한 독립운동의 선각자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촌은 독립운동의 선각자이다. 백범보다도 도산보다도 항일투쟁 과정에서 진짜로 죽어갔던 많은 이름 없는 독립지사보다도 더 위대한 독립운동의 선각자 인촌.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촌을 비롯한 많은 친일지식인들이 춘원 이광수가 주장한 '민족개조론'에 경도된 채 친일행위를 정당화했다는 것을 말이다.

야만의 세기였던 20세기가 종료되고 21세기가 열리는 지금 한국사회는 50여년전의 과거조차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일간지 '동아일보'는 정론의 길을 포기하고 김성수 일가의 기관지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작태를 보인다. 언론개혁과 친일청산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사냥꾼들 앞길은 고난의 가시덤불 숲으로 가려져 있다.

민족지로서의 권위를 자부하는 동아일보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나는.
진실을 외면한 채 지식만 파는 교수들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다. 나는.
나는 동아일보와 최교수에게 웃음을 짓는다. 한나 아렌트가 권위에 가장 강력한 적은 경멸이며, 권위를 훼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웃음'이라고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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