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시절, 동아일보는 모든 것이었을까?

동아일보와 최정호 교수의 인촌 김성수 미화를 비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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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원(buddhist21)등록 2002.04.02 16:11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교육, 언론, 산업분야의 민족 역량을 키워 독립을 준비한 선각자를 아십니까. 과연 이 선각자는 누구일까요. 안창호 선생, 아님 김구 선생, 설마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아니겠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가 무슨 선각자였던가. 권력에 눈먼 초라한 늙은이에 불과했지.

그럼 누구인가. 동아일보가 말하는 민족독립의 선각자는 인촌 김성수란다. 다른 이도 아닌 동아일보의 창간주인 김성수다. 지난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특집으로 그를 조명한 특집기사가 두 면에 걸쳐 실렸다.

예나 지금이나 동아일보가 정론을 말하는 신문이라곤 보지 않지만 언제 김 씨 가문의 기관지로 전락했는지 답답하다. 이번엔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쳐 혀를 차보기도 했다. 동아일보의 뻔뻔스러움에 감동(?)하기도 했고….

동아일보가 자화자찬 격으로 창간주인 인촌 김성수를 찬양하는 건 그렇다쳐도 더욱 꼴불견은 울산대 최정호 교수의 특별기고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난 언론재벌에게 '지식'을 파는 불쌍한 지식노동자의 비애를 읽었다. 그는 동아일보에 '돈'받고 글질을 하는 게 무슨 큰 영광인줄 알겠지만. 우리의 가여운 교수 최정호 그는 동아일보에 고용된 불쌍한 지식노동자일뿐이다.

지식노동자 최정호 교수는 기고에서 옛 동독 공산당 독재치하에서 반체제 인사를 보호하고 서방세계로 안전하게 이주케 한 '만프레드 슈톨페 목사'와 인촌의 행적을 동일시한다. 그는 슈톨페 목사가 반체제 인사들을 보호하고자 동독 집권당 간부들과도 빈번하고 더러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인촌도 일제와 그러했을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덧붙여 우리의 지식노동자는 슈톨페 목사의 동독 공산당과 친밀했던 행적이 통일 이후 폭로돼 비난이 쏟아졌을 때 서독 사회민주당 소속의 정치인 도흐나니 박사가 그를 변호했다고 애써 강조한다. 동독 공산당 치하에서 집권당의 요인들과 어느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었더라면 슈톨페 목사가 어떻게 반체제 인사들을 비호하고 그들의 서독행을 도울 수 있었겠느냐고 되묻는다. 더구나 동독 공산당과 犬猿之間(견원지간)인 사회민주당 정치인도 슈페터 목사를 옹호하는데, 왜 한국사회는 인촌을 친일파로 매도만 하고 옹호하는 목소리조차 없냐고 훈계하고 싶어한다.

지식노동자는 생계문제 때문에 이토록 가엾게 지식을 팔고 있다. 도무지 성립될 수 없는 비유를 들어가면서 말이다. 교수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럼 인촌 김성수는 민족의 독립 때문에 친일을 했다굽쇼.

또한 우리의 불쌍한 지식노동자는 인촌의 친일행각을 합리화하기 위해 나치 독일 군사정보국 책임자로 있던 카나리스의 예를 빌려온다. 그는 카나리스 제독이 긴요하게 구출해야 될 유대인 과학자나 예술가들을 국외로 탈출시킬 수 있었던 것도 그에 대한 나치 집권층의 신뢰가 구축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외친다.

우리의 지식노동자는 어차피 팔린 몸뚱이라 누구의 권위도 필요 없지만 자기 주장에 자신이 없는지 도흐나니 박사를 자주 인용한다.

지식노동자 최 교수는 카나리스 제독의 반히틀러 음모가 드러나 처형되었으니 망정이지 그가 무사히 살았다면 그는 분명 나치의 거물로 매도당했을 것이라고 협박한다. 아무 것도 모르는 후세 사람들에게…. 인촌 김성수는 일제에 의해 처형됐어야 했다. 그래야 인촌의 독립운동이 망각의 역사가 아닌 실존의 역사가 될 수 있다. 그래야 아무 것도 모르는 요즘 사람들이 인촌을 친일파라고 매도할 수 없게 말이다. 그래서 우리 최 교수는 슬프다. 인촌이 일제에게 처형당하지 않고 호의호식하며 지낸 사실이 슬픈 것이다.

지식노동자 최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
'슈톨페 목사의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인촌 김성수의 동아일보가 일제치하에서 민족언어로 신문을 발행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슈톨페 목사와 같다고 한다. 더구나 숨통을 죄어오는 '사상통제'와 '언론통제'의 '현실적 제약(일제치하라는)' 아래 기댈 곳 없는 식민지 동포에게 매일 신문을 제작 보급한다는 건 위대한 애국행위였다고 애써 강변한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면 묻는다. "정말 그런가?"

지식노동자 최 교수가 그 어떤 언변으로 인촌의 친일행적을 합리화하고 미화시키더라도 그는 민족의 법정에 서야할 죄인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 가관인 지식노동자 최 교수는 국외에서 항일투쟁을 했던 독립지사들의 행적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투덜거린다. 그의 말을 빌려 들어보자.

"일제 35년의 식민통치사는 ... 이 겨레가 겪은 '국내'의 역사이다. 그것은 해외 독립투사들의 자랑스러운 광복의 역사이기에 앞서, 그 이상으로 힘없고 이름 없는 백성들이 당하고 ... 부끄러움을 견딘 수모와 수난의 역사였다. ... 광복을 맞아 해외 망명에서 화려하게 돌아온 독립투사들의 프로필은 크게 부각되고 그들의 업적은 대서특필되곤 하였으나 국내에서 당하고 짓밟히고 수모 받은 백성들의 '실존적'인 식민지 체험은 독립만화와 함께 기화하여 하늘로 사라져버렸다."

지식노동자 최 교수의 궤변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군요.
최 교수의 주장대로 일제 침략의 역사의 '국내'의 역사이다. 그런데 '국내'의 '실존적' 고통을 망각의 역사가 되었다. 그는 이 실존적 괴로움을 망각하고 국외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항일투쟁만 독립운동인 것처럼 포장하느냐라고 홀로 외친다. 인촌 김성수는 이 실존적 고통 속에서 현실적 제약을 받아들이면서 민족에서 봉사한 독립운동의 선각자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촌은 독립운동의 선각자이다. 백범보다도 도산보다도 항일투쟁 과정에서 진짜로 죽어갔던 많은 이름 없는 독립지사보다도 더 위대한 독립운동의 선각자 인촌.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인촌을 비롯한 많은 친일지식인들이 춘원 이광수가 주장한 '민족개조론'에 경도된 채 친일행위를 정당화했다는 것을 말이다.

지식노동자 최 교수는 인촌의 행적을 미화시키는 자기의 글빨에 사뭇 믿음이 안 갔던지 김준엽 박사를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장식한다.

'일제시대, 그 당시에는 동아일보를 한국의 정부로 생각했었다'고.

거참 김준엽 박사가 노망이 드셨나 아니면 지식노동자가 자기에게 유리에게 부분만 발췌해서 인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마지막으로 말을 이어본다.
민족지로서의 권위를 자부하는 동아일보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는 나는, 지식노동자로 가득 찬 교수들의 권위를 인정할 수 없는 나는,
동아일보와 최 교수에게 웃음을 짓는다.
한나 아렌트가 권위에 가장 강력한 적은 경멸이며, 권위를 훼손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웃음'이라고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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