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위컴 주한미군사령관의 `들쥐발언'을 상기한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하는 우리가 문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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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석(arisan)등록 2000.07.25 14:34
80년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의 이름은 존 위컴. 박정희 시망 이후 전두환의 신군부가 들어서자 그를 지지하는 유명한 `들쥐발언'으로 한국민의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힌 인물이다.

위컴은 “한국사람들의 국민성은 들쥐와 같아서 한국민에겐 전두환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또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는 망언을 했다. 일본에서 가끔 터져나오는 극우관료들의 헛소리와는 `체급'이 다른 메가톤급 망언이다.

그런데 이러한 민족적인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말을 듣고도 학생들한테서만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을 뿐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았다. 당시 언론이나 정부에서도 별다른 항의가 없었다. 마치 위컴의 말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듯이.

위컴 발언 이후 20여년이 흐른 지금 주한미군은 또 다시 한국민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대형사고를 일으켰다.

8~90년대를 거치면서 살인, 성폭행, 폭력 등 크고 작은 수많은 범죄로 끊임없이 한국사람들을 괴롭혀 온 미군이 급기야는 서울시민의 젖줄인 한강에다 독극물을 풀어버렸다. 또 이에 대해 사과를 하니마니 옥신각신 하다가 겨우 대령 한사람이 나와서 사과하는 시늉만 보였다.

글쎄, 만약 한국군이 미국 뉴욕의 허드슨강이나 워싱턴의 포토맥강에다 독극물을 풀어버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기다 뉴욕이나 워싱턴 시장에게 사과를 하니마니 밀고 당기다가 대령 한사람이 마지못해 나가 고개만 한번 숙이고 돌아온다면?

주한미군은 20여년전 위컴이 가졌던 한국인에 대한 생각이 더욱 한국민을 얕잡아보는 쪽으로 발전해버린 것 같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에 대해서는 한국사람들도 큰 책임이 있다.

미군의 `사과시늉' 기자회견에서 초점이 됐던 관련자 처벌에 대해 주한미군 공보실장은 `현재 조사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신은 환경법 전문가가 아니라 그 부분은 언급할수 없다며 전문가들이 조사한 뒤에야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말을 관련자 처벌에 의지가 있는 것으로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솔직한 미군의 속마음은 `이 나라 사람들은 별로 분노도 할줄 모르고 어쩌다 한번 화가 나봐야 곧 잊어버리니까 시간만 끌면 잠잠해지겠지'가 아니었을까.

일본에서는 근래 일어난 미군의 성추행 사건으로 여론이 비등해 오키나와를 방문한 클린턴 대통령까지 유감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성추행 사건 정도로는 큰 이슈가 되지 못한다. 한강에 독극물이 내버려졌어도 일본에서만큼 이슈가 되고 있진 않다. 이대로라면 미군의 생각대로 곧 있으면 잠잠해질지도 모른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하는 한국사람들.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을 막고 있는 것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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