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에서 내려다 본 전경
이강진
호주에서 휴양 도시로 유명한 골드 코스트(Gold Coast)로 이사했다.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른다. 우리는 한 평생 살면서 이사를 몇 번 정도 할까.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이다.
70세가 넘은 나의 경우만 보아도, 과거 셀 수없이 삶의 터전을 옮겨 다녔다. 심지어는 호주까지 와서 국적까지 바꾸지 않았던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역마살이 끼었다는 소리를 수없이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골드 코스트는 어느 정도 익숙한 도시다. 호주에 정착한 이후 제법 많이 찾았다. 브리즈번(Brisbane)에서 월드 엑스포가 열렸던 1988년, 시드니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들렸던 것이 첫 방문이다.
당시 이민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눈에 비친 끝없는 해변과 시월드(Sea World)에서 보았던 각가지 쇼는 나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자그마한 캐러밴에 의지해 호주를 여행할 때도 기착지로서 좋은 장소이기에 골드 코스트 야영장에서 머무른 적도 서너 번 된다. 따라서 골드 코스트는 내게 친숙하다.
퇴직한 삶이다. 골드 코스트가 마지막 삶의 터전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은 점칠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닌가.
내일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일단 골드 코스트의 삶에 충실하기로 마음 먹었다. 혹 내일 이사를 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퇴직한 삶의 무료함도 달랠 겸 일주일에 한 번은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트위드 헤드(Tweed Heads) 전망대에 올라 태평양을 바라보기도 한다. 바다를 끼고 끝없이 펼쳐진 산책로를 걷기도 한다. 예전에 캐러밴 야영장에서 지내면서 아침마다 걸었던 벌레이 헤드 국립공원의 산책로를 찾기도 한다. 관광객이 아닌 주민의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보니 색다른 기분이 든다.
골드 코스트라고 하면 바다를 연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곳에 살면서 근처에 산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탬버린 마운틴은 관광객 신분으로 두어 번 가본 적이 있다. 다른 곳은 없을까. 지도를 보니 레밍턴 국립공원(Lamington National Park)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들어본 국립공원이다.
처음 가본 국립공원, 숲내음... 여기에 왜 비행기가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레밍턴 국립공원을 찾아 떠난다. 구름이 낮게 깔려 파란 하늘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온다는 예보는 없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해 운전한다. 처음 가보는 도로다. 이름 모를 호수도 지나고 언덕 위에 새로 조성된 마을도 지나친다. 골드 코스트에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얼마나 운전했을까 제법 큰 마을이 보인다. 카눈그라(Canungra)라는 동네다. 공원 옆에 주차하고 심호흡을 하는데 작은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호주 오지를 다니다 보면 작은 교회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회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신자는 몇 명이나 될까.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어려운 오지 교회를 지키는 목사님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러한 교회에서는 자식에게 대물림하면 존경받을 것이다. 한국의 대형 교회에서는 물의를 일으키지만.
다시 차에 오른다. 국립공원까지 30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앞으로 100km 구간에는 주유소가 없다는 경고판도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다. 조금 더 운전하니 대형차는 20km, 승용차는 40km라는 속도 제한 표지판이 보인다. 급커브가 많고 중간중간에는 1차선 도로도 많다. 속도를 낼 수 없는 도로다.
협소한 도로를 따라 산속 깊이 들어간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일품이다. 차를 세우고 멋진 계곡을 사진에 담고 싶지만, 도로변에 주차할 공간이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좁은 도로를 계속 운전해 올라간다.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은 한가한 편이다.
차에서 내려 크게 심호흡한다. 산속 내음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조금 걸으니 뜻하지 않게 비행기가 전시되어 있다. 안내판을 읽어본다. 브리스베인에서 시드니로 향하던 비행기가 1937년 래밍톤 국립공원에 추락했다고 한다.
탑승객 7명 중 2명은 구조하였으나 5명은 사망했다는 설명이다. 당시에 추락했던 비행기 모형을 전시해 놓은 것이다. 안내판에는 구조대원의 활약상을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