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무엇이냐면(3)

등록 2024.10.21 09:22수정 2024.10.2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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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연금재정의 균형 상태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것은 임금상승률이라고 했다. 임금이 상승하면 보험료 수입도 늘어나지만 나중에 줄 연금도 늘어나서 재정은 장기적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다만 노동인구의 감소와 장수리스크는 연금재정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에 이 두가지 위험에 재정이 자동으로 적응하여 '항상성'을 유지하는 메커니즘이 '거시경제 슬라이드'라고 말했다.

보험료를 고정하고 목표연도에 남겨야 할 적립금 수준이 결정되면, 그 사이의 인구구조의 변동이 연금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자동적으로 조정하여 연금재정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 9월 5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연금개혁안 중 그나마 가장 경청해서 논의해 볼 주제가 자동으로 재정을 조정하는 방식의 시스템화를 의미하는 '자종조정장치'의 도입인데, 그 전에 그럼 항상성 유지가 무엇인가?
연금재정의 항상성 연금재정의 항상성 유지 구조
연금재정의 항상성연금재정의 항상성 유지 구조네이버 지식백과

항상성 유지를 <그림 1>로 설명하면, 들어올 돈과 나갈 돈을 결정해서 균형을 맞춰놨는데, 인구구조가 급속하게 고령화되어 평형상태가 소실된다고 변화가 감지되면, 수용체인 연금재정은 자동조정장치를 통해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에 재정조정을 계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일정 정도 평형상태가 유지된다고 판단되면 재정조정을 멈춰야 하는지를 자동으로 조정하여 불균형 상태를 해소한다.

<그림 2>은 거시경제 슬라이드의 발동 시기의 차이가 장래 세대의 최종 소득대체율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이미지화한 것이다. 거시경제 슬라이드가 조기에 발동하면, 장래 세대의 소득대체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지만 반대로 지연되어 발동하면 대체율은 낮아진다.

[그림 2] 거시경제 슬라이드 발동 시기의 차이가 최종 소득대체율에 미치는 영향 거시경제 슬라이드의 발동과 소득대체율, 그리고 세대 간 재분배
[그림 2] 거시경제 슬라이드 발동 시기의 차이가 최종 소득대체율에 미치는 영향거시경제 슬라이드의 발동과 소득대체율, 그리고 세대 간 재분배후생노동성

2004년 연금개혁에서 보험료 수준을 고정했기 때문에 보험료 수입은 이미 확정되어 버렸다. 그리고 약 100년 후에 남길 적립금의 수준을 그해 급여의 1년분으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연금제도에 쓸 총액도 이미 결정되어 있다. 즉 이미 결정되어 있는 총액을 놓고 어떻게 세대 간에 분배할지를 결정하는 일만 남게 된 것이다.

A∼D까지의 연금조정분 ①과 D∼F까지의 연금조정분 ②가 같기 때문에 현재 높은 소득대체율을 조기에 조정(A)해 두면 그만큼 거시경제 슬라이드 적용기간(조정기간)이 짧아져(C의 조기 조정기간 종료) 후세대의 연금수준을 높게 유지할 수 있다(<그림 2>의 실선 부분). 반대로 앞세대가 조금 더 받겠다고 적용 기간을 뒤로 미루면(B의 지연 조정 기간 발동 시기) 적용 기간이 길어지게 되어(E의 지연 조정 기간 종료) 후세대는 그만큼 연금이 줄 수밖에 없게 된다(<그림 2>의 파선 부분). 2004년 연금개혁으로 연금은 제로섬 게임이 된 것이다.

이러한 제로섬 상황에서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조기에 발동하면 그만큼 장래 세대의 소득대체율을 높게 유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현재의 고령자가 미래의 손주에게 보내는 '용돈'을 더 늘릴 수 있다. 미래의 손주 세대가 좀 더 낳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길 바라고 그들의 부양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다면 거시경제 슬라이드를 현 세대의 급여 삭감 수단이 아닌 손주 세대의 연금 수준으로 이해하고 예외 없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자동조정장치는 5년마다 자동으로 해야 할 재정계산제도의 실패에 따른 25년 동안에 9%인 채로 고정된 보험료율에 대한 한계, 세계 유래를 찾기 어려운 빠른 속도의 저출생과 고령화를 반영할 수밖에 없는 조정의 필요성, 그리고 한계와 조정을 통해 고갈 공포론에 맞서 연금재정의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시스템화 한 것이다. 이걸 어느 조건에 어떻게 도입하는 것이 인구감소에 따른 경제의 항상적 손실을 줄일 수 있고 그래서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가? 연금뿐 아니라 의료와 요양 등 미래 수요 급증에 어떻게 제도 간 조합을 통해 대비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은 빨리 논의할수록 좋다.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 다음 회에 계속


#거시경제슬라이드 #재정균형 #자동조정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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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대 강사, 사회정책 박사. 일본 사회정책 전공, 사회보험 전공, 전 공무원 연금개혁 국민 대타협 기구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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