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모여 하는 게임은 색다른 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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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게임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졌음에도 아이들은 혼자 플레이하는 것보다 친구와 같이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각자 집에서 접속하여 온라인으로 만날 수 있음에도 굳이 오프라인 공간에 모이는 것이다. 옛날 구식 비디오 게임기처럼 전선이 주렁주렁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같은 현실공간에 모여 온라인 게임을 한다.
나는 이 현상이 꽤 신기해서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유심히 관찰하는 편이다. 벤치에 줄줄이 앉아서 플레이하는 애들도 있고, 육교 아래 시니어 일자리 할아버지가 가져다 놓은 소파에 누운 애들도 있다. 여름에는 더워서 땀이 흐르고, 겨울에는 추워서 바들바들 떤다. 왜 어린 게이머들은 로컬에 모여 게임하는 재미를 포기하지 못할까.
내가 나름대로 결론 내리기로는 '휴먼 터치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 같다. 함께 모여서 모바일 게임을 하면 혼자 할 때보다 색다른 맛이 있다. 무엇보다 침 튀기며 수다 떨기가 가능하다. "아이템 주워! 스킬 써! 피해! "같은 단발성 언어가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공기를 타고 전달된 진짜 말의 진동이 주는 환희가 있다. 채팅과는 결이 다른 의사소통 방식이다.
또 못하는 친구의 게임 플레이를 대신해주기도 한다. 친구 휴대폰을 가져다가 현란한 컨트롤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템을 나누기도 하고. 아이들 표현에 따르면 '쩔 하기(숙달된 고등급 유저가 초보 플레이어 도움 주기)'다. 그럼 또 고맙다고 아이스크림 과자 할인점에서 산 주전부리가 오간다. 어른으로 치면 골프 치면서 레슨도 약간 해주고, 보답으로 밥을 사는 개념이랄까.
나 또한 우연히 초등학생 게임판 가운데 끼게 된 적이 있다. 장소는 신축 아파트 입주박람회장이었다. 장인 장모님이 칠순이 되기 전에 아파트라는 곳에 한 번 살아보고 싶다 하셔서 생애 최초로 구입한 아파트였다. 아내는 장모님 곁에서 실질적으로 입주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동안 나는 우리집 두 초등학생을 돌봤다. 가구와 가전제품, 커튼을 비롯해 입주민을 위한 온갖 상품이 즐비한 가운데 어린이를 위한 오락실과 영화관이 있었다. 이름은 오락실이고 영화관이지만 실상은 소박했다. 매트 위에 오락기 두 대와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텔레비전이 놓여 있었다.
나는 오락실로 갔다. 신기하게도 그 오락기는 동전을 넣을 필요가 없었다. 기계 한 대에 내가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하던 게임 수백 가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만약 플레이를 하고 싶으면 목록에서 하나를 골라 버튼을 누르면 실행되는 방식이었다.
게임 'Golden axe(국민학교 시절 우리 동네 오락실에서는 '황금도끼'로 표기됨)'를 선택했다. 옆집 형과 거금 오백 원을 투자해 끝판 대장까지 갔던 전설의 게임이었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메인 화면이 켜지는 순간 모든 지식과 요령이 되살아났다. 호리병을 여러 개 모으면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다든가, 적이 타고 있는 공룡을 빼앗을 수 있다는 건 상식 중에 상식이었다.
차마 어린이 사이에서 무려 직업이 초등교사인 아저씨가 직접 플레이할 수는 없었기에 두 딸에게 조이스틱을 양보하고 훈수를 두었다. 덩치 큰 아저씨가 프로게이머 감독처럼 완전 몰입 상태에 빠진 모습이 웃겼는지 주변의 다른 어린이들이 슬금슬금 모이기 시작했다. 오락실 갤러리들은 등 뒤에 바로 붙어서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뒤에 해골! 피해!"
"불 쏘는 용! 빼앗아!"
매트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은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 2층 오락실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리운 느낌이었다. 오프라인에서 함께 모여 게임을 한다는 건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소중한 캐릭터 목숨을 아껴가며 스테이지를 깨는 희열. 어린이 무리 가운데서 나는 깨달았다.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