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라 트란스몬타나 Churra Transmontana포르투갈 북쪽 산악지역의 양들. 올리브 새순들을 싹 먹어치운다.
라정진
한참 걸어 드디어 양떼가 있는 곳에 도착. 엇! 남쪽 알란테주 우리 동네에서 보던 양들과는 생김새가 많이 다르다. 거칠어 보이는 털이 좀 더 길고, 뿔도 길게 나 있는 것이 산양 생김새다. 남쪽 양들과는 많이 다르네요라고 했더니 그렇단다.
"슈라 트란스몬타나 Churra Transmontana에요. 울은 의류용으로 적합지 않습니다. 얘네들은 올리브나무의 싹을 부지런히 먹어치우는 역할을 하죠."
아하! 알겠다. 사업상 포르투갈과 한국을 왔다갔다 하는 나는 포르투갈 남쪽에도 집이 있다. 그곳에 올리브 나무가 한 200그루 정도 있는데, 올리브 나무 아래에서 항상 새로운 싹이 튼다. 보기엔 무척 예쁘고 상큼해 보인다. 하지만 올리브 열매와 나아가 본체에는 좋지 않다. 새로운 싹을 틔우고 크는데 많은 영양과 물이 필요하기 때문.
제때 새순을 제거해 주지 않으면 열매가 제대로 맺지 않을 뿐더러, 본체 나무도 서서히 마른다. 새 순은 야금야금 왕성하게 자라는지라, 이를 잘라주는 것도 일이다. 이 때문에 우리 집에서도 항상 양을 몇십 마리 놓아길렀다. 양들은 이 올리브 새순을 무척 좋아하기에 몇십 마리 정도를 풀어놓으면 알아서 맛있게 잘 먹는다. 잘 먹고 나선 당연히 똥오줌을 잘 싸고, 이는 고스란히 천연비료로 돌아온다. 그야말로 자연의 순환.
215헥타르의 아쿠실라 농장에선 몇십 마리가 아닌 300여 마리가 이 역할을 한다. 밤이 되면 양들이 머무는 축사 역시 무척 큰데, 바닥에 깔아놓은 짚들은 수시로 바꿔준다. 양들의 똥오줌이 진득하게 베인 짚은 베어낸 풀, 가지치기에서 나온 잔여물들과 함께 천연퇴비가 된다.
아름답고 완결되는 순환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아이고야... 실제로 그 일들을 꾸준히 유지하고 관리하려면 보통 일은 아니겠다 싶었다. 단순히 제초제며 농약을 쓰지 않는다와 같은 차원을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농장의 생태계 순환과 지속가능성을 이루려는 주아큉의 노력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양을 만져보고 싶다는 루이지냐를 만류한 후 mill(착유 시설)로 향했다. 올리브는 보통 10월 초순부터 추수할 수 있는데, 정확한 시기는 과육의 상태를 점검한 후 결정한다. 너무 설익지도, 과하게 익지도 않은 상태를 확인한 후 적절한 시점에야 추수할 수 있다. 최상의 과육 상태가 아니면 당연히 최종 오일의 품질에 영향을 주기 때문.
수확한 올리브는 세척하고, 잎이나 불순물을 1차로 제거한다. 이후 품종과 크기에 따라 분류가 이루어지고, 바로 올리브를 압착하여, 약 30분 정도 셰이커shaker를 통과시켜 불순물을 여과한다. 이후 디캔터 원심분리기를 통과시켜, 3,000회 정도의 회전을 통해 페이스트(아래쪽)와 오일 성분(위쪽)으로 분리시킨다.
이 단계에서 비로소 순수한 오일 성분이 추출되는데,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또 다른 종류의 원심분리기를 통과시켜 좀 더 깨끗한(clarified/purified) 오일을 뽑아낸 후, 24시간 동안 실린더 탱크에 머무는데, 이를 통해 미세한 오일 외 액체 성분이 분리되면서 정말 순수한 오일이 얻어진다.
"재래식 올리브 착유는 당연히 이렇게 하질 않았죠. 압착이니, 원심분리기니 다 없었고, 그저 올리브를 으깨는(mashed) 식으로 오일을 짰는데, 당연히 별로 좋은 품질이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기계화 과정에서 공기와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된다. 산화 방지를 위해서다. 추수와 동시에 바로 착유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밀mill이 바로 올리브 과수원 한가운데 있으니 산화가 될 시간이 없겠다.
또 하나는 온도 조절. 고온에서는 더 빨리 더 많은 오일이 추출되지만, 오일의 풍미와 산화에도 영향을 받는다. 아쿠실라 착유 시설에는 온도조절장치가 있어 이를 세심하게 항상 조절하는데, 18~23도에서 작업이 이루어진다고(흔히 말하는 '저온 압착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은 보통 27도 이하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특유의 아로마와 유효성분을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https://www.oliveoiltimes.com/basics/what-does-cold-pressed-really-mean/84235).
착유 시설 옆에는 저장 창고가 있다. 여기는 아쿠실라에서 생산한 오일뿐만 아니라, 근처 소규모 오일 생산자들의 탱크도 같이 저장되어 있는데, 5헥타르, 5000 리터 등 소규모 지역 생산자들에게 저장 장소를 빌려주고 있다고. 커뮤니티에 대한 일종의 기여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