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다양성재단이 추진하는 리와일딩 프로젝트 '야생신탁'의 선정지 인근에서 발견된 오소리.
생명다양성재단
"자연은 자기 갈 길 알아서 택하게 해"
- '야생신탁'을 진행하게 되면, 해당 부지는 어떤 모습으로 관리되나.
"야생신탁이라는 말처럼 진짜로 야생에 믿고 맡기려 한다. 리와일딩의 본정신으로 충실하게 돌아가서, 마치 부모와 같은 관리자 역할을 안 한다는 것이다. '부모와 같은'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우리는 아직도 자연이라거나 생물‧동물을 대함에 있어서 우리가 돌봐줘야 하는, 마치 그 책임을 우리가 다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자기가 갈 길을 알아서 택하게 해 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구체적으로는, 식물을 심지도, 울타리를 치지도 않을 것이다. 동물도 자연스럽게 찾아오게 하지, 우리가 추가해서 넣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 상태를 유지해서 사냥 압력에 시달리는 동물들이 마치 생추어리처럼 와서 쉴 수도 있게 할 것이다. 진짜 그 공간만큼은 야생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공간은 주변 저수지‧산림과 연결돼 있어서 너구리나 오소리‧고라니‧멧돼지‧들개를 비롯해 수많은 동물들이 올 텐데, 그럴 때 사냥꾼들이 절대 우리 땅에서 사냥을 못하게 하려고 감시는 할 것이다. 또 자연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카메라도 설치하고 해서 관찰을 할 것이다. 그런 종류의 일만 하지, 극히 예외적인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 이상의 관리는 하지 않으려 한다."
- 지금은 야생신탁 예정 부지가 어떤 모습인가.
"지금은 자연 상태이긴 한데 농막이나 텃밭을 비롯해 시설이 좀 있다. 그런 농막을 비롯한 시설은 치울 생각이다. 바닥은 포장되어 있는 상태는 아니고 흙이긴 하다."
- 야생신탁을 추진하는 데 주민 반대는 없었나.
"아직은 우리 소유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없지만) 앞서 설명한 식으로 관리하면 주변 땅값을 떨어뜨린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가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알 게 뭔가. 바로 그런 걸 반대하고 싶어서 이걸 하는 거다. 주변을 보면 돈벌이 때문에 남의 땅에도 농약도 치는 일이 있지 않나.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것은 이해하면서 자연을 보존하는 일은 그게 무슨 공익적 피해를 주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그런 것에 대해 항거하려 한다."
- '야생신탁' 대상지 선정 기준 중 하나가 '개발 압박의 가능성이 영 없지는 않은 곳'이었다. 이 기준을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가.
"그렇다. 일부러 조금은 애매한 곳을 택했다. 그래야 우리가 땅을 삼으로써 벌어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야생신탁을 하게 된다면, 언제쯤 자연의 회복을 눈에 띄게 확인할 수 있겠나.
"그런 건 없다. 우리 눈에 얼만큼 보이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걸 분석하려는 노력은 저희도 하겠지만 지금도 그곳엔 자연이 있고. 동물들도 찾아오고 있고 지금도 나쁘지 않다. 그냥 더 좋아지면 좋은 것이다. 제 생각에는 1년 정도만 가만히 놔둬도 훨씬 더 많은 생명들의 활동을 그 안에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동물들은 자기가 어딜 가면 안전하다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안다. 동물이 어딘가에서 먹고 사는 것과 번식하는 것은 다르다. 번식은 진짜 새끼를 낳을 만하다고 했을 때 하는 건데, 제 생각엔 진짜로 그곳에서 번식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곳이 그런 번식의 터가 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해 본다."
"그린벨트 좋아하지만 철학적 힘 없어... 그 대항마가 리와일딩"
- 리와일딩을 위해 시민들 각자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까.
"저희 같은 프로젝트에 기부하거나 참여하는 게 제일 좋다. 관련 의견‧민원을 지자체 등에 올리는 것도 좋다. 리와일딩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면, '인간 본의대로 개발하거나 재단하려고 하는 행위를 원하지 않는다', '자연성 회복을 원한다' 같은 걸 주장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구청 같은 곳에선 안전을 이유로 산 속에다가 가로등을 설치하곤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야생성 동물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그럴 때 시민들이 '나는 밤은 밤다운 것을 원한다'고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조그만 텃밭이나 발코니에 있는 화분 등에 찾아오는 자연(생물)을 막지 말고 야생을 좀 더 받아들여 보자는 이야기도 하고 싶다."
-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리와일딩 추진 움직임도 있나.
"당연히 거기까지 가면 좋다. 사실 한 지자체에서 연락이 와서 '생태적 알박기'를 같이 하자는 제안이 왔었는데, 잘 안 됐다. 그래도 그런 걸로 봤을 때 정부도 관심은 있다는 느낌은 든다. 그런데 이런 것은 기본적으로 항상 신시민이 시작한다. 그래서 저희는 그걸 선도하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는 정부도 이런 것을 도입하고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진행을 하고 있다."
- 최근 정부에선 부동산 대책이라며 서울 그린벨트 해제를 발표하지 않았나. 한쪽에선 숲을 파괴를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선 그걸 막는 상황이 제로섬 게임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와서 그린벨트를 전에 없이 가장 많이 풀고 있는데, 바로 그래서 리와일딩이 중요하다. 사실 저는 그린벨트를 좋아하고, 그린벨트 해제가 너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린벨트는 철학적으로 아무런 힘이 없다. 예전 박정희 정권 때 생긴 것이고 더이상 현대인에게는 그렇게 와닿는 개념이 아니다. 그러면 결국 철학적, 담론적으로 대항할 것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 대항 논리를 가져다주는 것이 저는 리와일딩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쪽에선 파괴를 하고, 한쪽에선 막고 있다'고 질문을 하셨는데, 그 비율이 절대로 50 대 50이 아니다. 99 대 1 정도도 안 될 거라고 본다. 우리는 1도 안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압도적으로 비율이 다른 만큼, 저희 쪽에서 하는 것은 새로운 시도니 리와일딩을 통해 사회 분위기에 반전을 좀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