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세운상가에서 고양이가 길바닥에 누워 있다.
김하연
- 지금까지 봤던 고양이 중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아이가 있나요?
"2010년 세운상가에서 길바닥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고양이를 만난 적 있어요. 당시 그 아이가 죽은 줄 알고 카메라를 내밀었는데 갑자기 고개를 들었어요.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지만 생기 있는 눈을 보고 살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아보니 심한 탈수와 배고픔으로 신장 기능이 마비됐더라고요. 그때는 치료를 위한 후원을 받을 생각도 못 하고 수입이 넉넉하지 않았거든요. 어쩔 수 없이 안락사되었는데 그 일이 아직도 죄책감이 들어요. 그 아이는 떠났지만 사진과 이야기는 남았으니 그걸 알리는 게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 책을 보면 이름이 있는 길고양이도 있던데 작가님만의 이름 짓는 방식이 있나요?
"처음 지어준 이름은 '먼로'였어요. 볼에 점이 있는 모습이 마릴린 먼로랑 닮았거든요. 갸우뚱하는 모습에 '우뚱'이라는 이름을 붙인 아이도 있고, 어떤 고양이는 항상 자고 있어서 만성 피로를 줄여 '만피'라고 지었죠. 사실 요즘은 이름을 짓지 않으려고 해요. 이름을 붙이면 책임감이 생겨서 나중에 떠나보낼 때 마음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대할 때는 좋아요. 이름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그들을 가까이 느끼고 돌보는 데 협조적으로 되거든요. 이름을 아는 순간부터 그냥 지나가는 고양이가 아니라 아는 아이가 되니까요."
- 길고양이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이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오히려 무관심한 사람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인구를 100명으로 치면 90명 정도는 길고양이에 별 관심이 없어요. 그들에게 길고양이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해요. 고양이를 좋아해서 돌보는 사람들이 길고양이에만 집중하지 말고 주변인과의 관계를 고려했으면 좋겠어요. 다툼은 결국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길고양이가 밥 먹는 장소를 불편해한다면 그들과 합의해 자리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과의 갈등을 줄이면서 고양이를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길고양이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가요?
"연대의 힘이 중요해요. 단체를 만들어서 지자체가 길고양이를 위한 정책을 만들도록 지속적으로 건의해야 해요. 지역명을 딴 고양이 보호 단체가 전국에 100개가 넘어요. 그런 곳이 더 활성화되는 게 길고양이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죠. 실제로 관악길고양이보호협회가 활동하는 10년 동안 전국에서 가장 많은 길고양이 급식소가 설치됐고 최근에는 전국 최초로 길고양이 화장실 사업도 하고 있어요. 그런 사업은 고양이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노인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등 지역 사회에 큰 도움이 돼요. 이렇게 단체 연대가 길고양이와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 길고양이 급식소를 만들면 개체수가 늘어나 생태계를 교란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런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어요. 고양이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16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길고양이로 인해 생태계가 교란됐다는 자료는 나온 적이 없어요. 오히려 신증후군출혈열(유행성출혈열)과 같은 사람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전파하는 쥐를 잡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런데 최근 길고양이 개체 수가 중성화와 로드킬 등의 이유로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게 문제예요.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매년 증가하는 로드킬 중 고양이 피해 사례가 절반 가까이 차지해요. 작년에도 3만 마리 이상의 고양이가 로드킬을 당했어요. 서울만 해도 2013년 25만 마리였던 길고양이가 2023년에는 10만 마리로 줄었죠. 작년에 영등포구청역에 쥐가 나온 적 있었는데 이는 고양이 개체 수 감소로 쥐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진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어요."
"길고양이가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