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 비밀결사 활동, 졸업 후 '대구격문사건'

[오늘의 독립운동가 30] 10월 8일 타계한 박명근 지사

등록 2024.10.08 11:43수정 2024.10.0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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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명근 지사, 대구격문사건 보도기사, 당시 대구고보 모습

박명근 지사, 대구격문사건 보도기사, 당시 대구고보 모습 ⓒ 국가보훈부, 대구근대역사관


1987년 10월 8일 박명근(朴命根) 지사가 세상을 떠났다. 본적이 '경상북도 대구 덕산 131번지'인 지사는 1909년 3월 2일 출생했으니 향년 78세였다.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교) 재학 때부터 독립운동에 매진하다가 고문과 투옥을 겪었다.

대구고보 학생이던 18-19세 때(1927∼8년) 학생비밀결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박명근ㆍ윤장혁ㆍ상무상ㆍ장종환ㆍ권태호ㆍ조은석ㆍ이봉재 등 학생비밀결사 지도부는 조직에 서무부ㆍ정치문화부ㆍ조직부ㆍ조사연구부ㆍ출판부ㆍ선전부ㆍ재정부 등의 부서를 편성해 활동했다. 이들은 식민지 노예교육 폐지ㆍ조선인 교사 배치 등을 요구하고 동맹 휴교를 일으켰다.

노예교육 폐지, 조선인 교사 배치 요구

동맹휴교투쟁은 1926년 3월 일본인 교사가 "조선인은 야만인"이라고 노골적으로 폄하한 데서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은 한국인을 '충량한 신민'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일본인 교사가 학교 안에서 공공연히 민족차별 발언을 자행했다고 해서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구고보의 어린 학생들은 민족적 모욕을 참지 않았다. 해당 교사 퇴출을 요구하면서 동맹휴교에 들어갔다. 학교측은 15명을 퇴학시켰다. 학생들은 자퇴원을 한꺼번에 제출하는 퇴학 투쟁으로 맞섰다. 하지만 맹휴는 성과 없이 학생들만 피해를 입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일본인 교사 "조선인은 야만인"

1926년 6·10만세운동이 일어났다. 학생운동은 이를 계기로 정치적 운동, 곧 민족운동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회과학 연구의 필요성을 느낀 대구고보 학생들은 신간회 대구지회 간부들을 초빙해 사상강좌를 열었다. 누적된 사상강좌는 본격적인 학생비밀결사 태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1927년 11월 신우동맹(新友同盟)이 결성되었다. 신우동맹은 그해 혁우동맹, 그 이듬해인 1928년 적우동맹, 일우동맹, 우리동맹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활동했다. 계속 개명을 한 것은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은신술이었다.

비밀결사 결사의 이름을 바꿔가며 활동


하지만 1928년 11월 6일 일제 경찰의 동맹휴학 수사 과정에서 학생비밀결사의 존재가 노출되었다. 105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체포되어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과로 끌려갔다. 이때 박명근도 구속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1년 동안 박명근은 미결수로 감옥에 갇힌 채 고문을 당했다. 대구지방법원은 1929년 10월 21일에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을 적용해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언도했다. 항고했지만 대구복심법원은 1930년 3월 11일 오히려 형량을 높여 징역 1년, 집행유예 5년 처분을 내렸다.

대구격문사건 때 재차 구속

박명근 지사는 1931년 '대구 격문 사건' 때 또 투옥되었다. 이 사건은 작년 8월 29일 격문 사건의 재판이었다. 일제는 8월 29일을 '합방 기념일'로 지정해놓고 해마다 기념행사를 열었는데, 이에 반발한 대구 청년들이 염매시장 등에 일본을 규탄하고 한국 독립의 당위를 주장하는 격문을 배포했다.

그 일로 대구소년동맹의 홍순명, 이남익 등, 신간회 대구지회의 류회동, 이강옥, 서정수 등, 그외 이상길 등 많은 청년들이 일제에 검거되었다. 그런데 1931년 1월 21일 '레닌 기념일'을 맞아 '노동자들에게 격함', '빵을 위해 투쟁하라', '자본가를 죽여라' 등을 담은 격문 수십 장이 대구 시내에 살포되었다.

50일 동안 감금된 채 악랄한 고문 당해

중외일보 기자로 있던 이육사(당시 이름 이활)도 이때 구속되었다. 일제 경찰은 대구 격문 사건을 50여 일이나 조사하면서 악랄한 고문을 일삼았다. 일제가 박명근, 채충식, 박명근 등 체포한 지사들을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된 날은 그해 3월 12일이었다.

대구는 학생들이 "해방의 그날까지 끝없는 항일 투쟁(김종규 논문 제목)"을 펼쳤던 도시이다. 계성학교 혜성단, 대구사범학교 다혁당과 무우원, 대구상업학교 태극단, 대구고보 동맹휴학 등 학생들이 일으킨 거사가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피체, 고문, 투옥 등 고난을 스스로 감수했다. 박명근 지사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덧붙이는 글 국가 인정 독립유공자가 1만8천여 분 계시는데,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소개하려면 1500년 이상 걸립니다. 한 달에 세 분씩 소개해도 500년 이상 걸립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 의거일 등을 중심으로 '오늘의 독립운동가'를 써서 지사님들을 부족하나마 현창하려 합니다.
#박명근 #다혁당 #대구고보 #동맹휴교 #태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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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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