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호 책표지
창비
옛 이야기 속 변신하는 동물 이야기는 구미호 이야기처럼 대체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사람이 되려고 하는 '잘못된 욕망'에 사로잡힌 동물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다.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여기는 인간들에 의해 숲은 점점 사라지고 동물들은 위기에 처한다. 인간의 민낯은 왜 이리도 자주 자연 앞에 드러나는지!
궁지에 몰리 동물들을 구하기 위해 '산(山)'은 궁여지책으로 살 곳을 마련한다. 잃어버린 이들만 찾을 수 있는 '숨겨둔 골짜기'로 동물들이 모인다. 고드레 하숙집의 식구들도 이곳에서 만났다. 서로를 구하고 서로를 살리며.
그러나 숨겨둔 골짜기 마저도 인간의 욕망 앞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다시 산은 가련한 동물들을 살리기 위한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사람으로 변신하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고. 변신의 방법을 알려주는 단 하나의 조건은, '변신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해치지 마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종종 복수를 꿈꾼다. 거친 자연 앞에 무너지면 자연의 속사정을 들어보려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목숨을 호랑이에게 빼앗긴 유복이처럼 기어이 복수를 하고야 만다. 정복욕이다. 마천굴은 살의 명령을 어기고 인간을 해친 호랑이였다. 유복이의 아버지는 이 마천굴에게 당하고 마천굴은 유복이에게 목숨을 잃는다.
마천굴을 따르던 무리들은 인간들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고 했지만 산은 인간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가르친다. 자연은 늘 인간에게 밀리고 당해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스스로 안간힘을 쓰며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 길을 찾는다. 그러니까 인간은 욕망하고 자연은 소망하는 것이다.
무엇을, 왜... 우리 자신을 만드는 '선택'들
위기를 만난 호랑이들의 길은 둘로 나뉜다. 호랑이로 남겠다는 자들과 사람으로 변신하여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호랑이.
호랑이들에게 변신하는 법을 가르쳤던 무당 호랑이 모악 할미는 그날 호랑이들의 빛나던 얼굴들을 잊지 못한다.
"그들은 스스로 선택했어. 용기를 내어 어떻게 살지 결정한 거야. 우리 자신을 만드는 건 바로 그런 선택들이야.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나도, 호랑이이자 사람인 너도 그렇지. 우리는 언제든 우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그걸 잊지 마."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선택은 어리석어 보이고, 어떤 선택은 약삭빨라 보이고, 또 어떤 선택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기도 하지만, 누구도 타인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
선택이 자신의 것이듯 선택의 결과도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기 때문이다.
작품 안에 가득한 인간의 욕망 사이로 '선택'이라는 주제가 관통을 한다. 중심인물인 루호와 지아, 그리고 구봉 삼촌의 선택은 우리가 일상처럼 하는 욕망의 선택에 균열을 일으킨다.
루호가 사는 고드레 하숙 옆집에 어느 날 지아네가 이사를 온다. 지아 가족은 특별한 능력이 있다. 사람으로 변신한 호랑이를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능력은 유복이 할아버지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능력이다.
호랑이에게 복수를 했던 유복이 할아버지가 어느 날 이 능력을 갖게 되고, 대대로 유복이의 자손은 이 능력으로 변신한 호랑이 사냥꾼이 된다. 지아의 아빠 강태씨는 이 능력 때문에 호랑이 사냥꾼으로 살아간다.
지아 역시 이 능력을 타고 났다. 사실 이사한 첫날부터 지아는 루호가 호랑이임을 알아보았다. 이미 아빠의 능력이 자아에게도 넘어간 것이다. 하지만 지아는 아빠에게 루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아빠와는 다른 선택을 한다.
루호의 선택, 지아의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