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넘게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서울의 동명
유영호
한편 40년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조선 건국 당시 정도전에 의해 지어진 지명이 그대로 살아 남아 지금도 우리 생활 속에서 불려지는 몇 곳이 있다. 제일 먼저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이 위치한 적선동(積善洞)은 조선시대 서부 적선방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경복궁 앞, 현재의 광화문광장은 당시 육조거리로 불리며 이호예병형공으로 통칭되는 6조를 비롯하여 어려 행정관청들, 즉 궐외각사들이 밀집하여 있던 곳이다.
이러한 관아는 국가행정을 취급하는 곳으로 백성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미로 <주역>에 나오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 선을 베풀면 반드시 경사가 따른다)'에서 따온 말이다. 참고로 적선방(積善坊)에 대응한 여경방(餘慶坊)은 덕수궁의 옆에 해당하는 지명이었지만 아쉽게도 지금 그 이름은 사라지고 중구 정동(貞洞)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지금은 북촌 한옥마을로 널리 알려진 종로구 가회동(嘉會洞)도 600년 넘게 자신의 이름을 지켜내고 있는 곳이다. 한자의 의미는 '기쁘고 즐거운 모임'이란 뜻으로 '어진 신하가 어진 임금을 만나 국운이 창성하는 좋은 만남'을 뜻한다.
그리고 '나라를 편안하고 안전하게 한다'는 뜻의 안국방(安國坊)이 지금의 안국동으로 남아 있고, 또 조선시대 시전이 배치되어 상권을 형성했던 종로1가의 남쪽 서린방(瑞麟坊)이 지금의 서린동으로 지속되고 있다.
한편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의 북쪽에 위치한 '통의동(通義洞)' 일대는 조선초기 의통방(義通坊)이라 하였으나 갑오개혁 때 통의방(通義坊)으로 고친 이름이다. 하지만 그 의미는 앞선 이름과 같고, 개명 주체 역시 조선이기에 여전히 600년 이상 자기 이름을 지키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 외 52방의 합성 지명들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정비 속에서 조선의 기존 지명들은 잔존과 소멸, 두 가지 운명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지명이 하나로 통합되기도 하였다.
예컨대 대학로 인근의 종로구 숭인동(崇仁洞)은 한성부 52방 가운데 그 인근에 위치한 숭신방과 인창방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며, 서울대학교병원이 위치한 연건동 역시 연화방과 건덕방에서, 또 동대문 옆 창신동과 숭인동은 인창방과 숭인방에서 각각 서로 다른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이렇게 작명 된 지명은 이 외에도 여럿 있으며, 그 밖에 자연부락 명칭에서 따온 것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처럼 두개의 지명을 합쳐서 새로운 지명을 만드는 방식은 행정구역의 확대와 정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재에 와서는 더욱 심하다. 하지만 인구가 늘며 새로운 행정구역이 탄생할 때 기존 법정동의 명칭은 그대로 둔 채 각 법정동의 명칭을 한 자씩 따서 새로운 법정동을 만드는 방식이다. 결국 새로운 법정동이 생겨도 기존 법정동의 명칭은 그대로 남아 있다.
예컨대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영안실부터 금화터널까지 도로 양쪽에 위치한 서대문구 대신동(大新洞)은 1962년 새롭게 만들어진 것인데 당시 대현동과 신촌동의 일부를 잘라 만들며 이름도 그 두 곳의 이름에서 각각 한 자씩 따온 것이다.
또 1995년 구로구에서 금천구가 분리 독립할 때 금천구 가산동의 경우는 가리봉동과 독산동의 일부를 취해 곳으로 지명 역시 가리봉동과 독산동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하지만 지하철역의 명칭은 조금 다르다. 교통수단이란 그것을 통해 이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각 행정단위의 이해관계로 전혀 새로운 역명이 탄생되어 이용객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1985년 성북구 석관동 지역이 인구대비 지하철역이 없어 주민들의 청원에 의해 그 곳에 수도권전철 1호선의 새로운 역이 신설될 때 그 명칭을 '석관역'으로 하려고 하였지만 그 역이 월계동에도 걸쳐 있어 월계역으로 해달라는 청원과 대립되며 결국 그 역이 서울의 어디쯤 위치하는지 누구도 모를 '석계역'이 되고 말았다. 이용객들은 석계역의 위치에 대한 새로운 학습을 해야만 했다.
이처럼 양자의 이해관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양자의 눈치만 보는 원칙없는 행정집행은 1996년 지하철 3호선의 대곡역 신설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곡역이란 명칭 역시 고양시 대장동과 내곡동에서 따온 이름이다. 결국 '내가 못 먹을 바에는 남도 못 먹게 침 뱉는 꼴'이 되고 만 셈이니 참으로 안타깝다.
하지만 최근의 실례로 그 동안 일제강점기부터 오랜 세월 경춘선의 한 역이었지만 간이역으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던 평내역이 그 일대 인구가 늘며 2006년 평내호평역으로 역명을 변경한 것에 대하여 무척 희망적이란 생각이 든다. '너도 죽고 나도 죽자'가 아니라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이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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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2015), 『서촌을 걷는다』(2018) 등 서울역사에 관한 저술 및 서울관련 기사들을 《한겨레신문》에 약 2년간 연재하였다. 한편 남북의 자유왕래를 꿈꾸며 서울 뿐만 아니라 평양에 관하여서도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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