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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16글자 지시사항? 이렇게 하면 없어진다"

[스팟인터뷰] 정의룡 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 "내용 없는 게 진짜 문제, 참모들 왜 전 정부 참고도 안했나"

등록 2024.07.11 17:09수정 2024.07.1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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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8일 문화체육관광부에 하달된 '16글자 대통령 지시사항 통보'.

지난 8일 문화체육관광부에 하달된 '16글자 대통령 지시사항 통보'. ⓒ 문화체육관광부


"간략한 대통령 지시사항이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난, 안전과 관련해서 이렇게까지 짧은 지시사항은 처음 본다. 국민들은 반지하 침수,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처럼) 한 줄로 나가는 것은 당연히 곤란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앞두고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내린 '16글자'짜리 호우 대비 지시사항이 입길에 오르고 있다. 정의룡 한국교통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 16자 대통령 지시사항에 대해 "아쉬움이 컸다"고 평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분석해 논문으로 발표한 바 있다.

정 교수는 "대통령 지시사항은 외부에 노출이 됐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이번엔 (대상 및 방법 지정 같은) 내용이 빠진 채 '준비하라'는 지시만 내려왔다. 때문에 '준비는 당연한 건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고,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라고 짚었다. 

그는 "대통령이 간단하게 지시했더라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들이 내용을 더 추가해서 하달했어야 한다"며 "(이전 정부인) 문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당연히 참고할 수 있는 건데 참고도 안 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주요 일문일답.

폐쇄적인 대통령 지시사항, 공개해야 하는 이유
 
a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8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도착해 환영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도열병의 거수 경례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2024.7.9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8일(현지시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75주년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미국 하와이 히캄 공군기지에 도착해 환영 꽃목걸이를 목에 걸고 도열병의 거수 경례를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2024.7.9 ⓒ 연합뉴스

 
- 이번 대통령 지시사항을 어떻게 봤나.

"아쉬움이 컸다. 대통령 지시가 공문으로 나간 이상, 관계 부처에 내부적으로 공유된 것일지라도 대외적으로 포착될 수가 있다. 따라서 대통령 지시사항은 외부에 노출이 됐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더구나 이번 지시사항의 주제는 전 국민과 관련된 재난, 안전이었다. 간략한 대통령 지시사항이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재난, 안전과 관련해서 이렇게까지 짧은 지시사항은 처음 본다. 국민들은 반지하 침수,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처럼) 한 줄로 나가는 것은 당연히 곤란하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간단하게 지시했더라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들이 내용을 더 추가해서 하달했어야 한다. 지시사항을 본 사람들이 정당한 지시임을 이해하고 인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집중호우가 예상된다'라는 현 상황에 대한 설명, '그동안 집중호우에 취약했던 곳은 어디였다'라는 장소 지정, '그러니 누가 미리 어떻게 점검하라'라는 대상 및 방법 지정 등이 포함되면 납득이 된다.

그런데 이번 지시사항에는 이런 내용이 빠진 채 '준비하라'는 지시만 내려왔다. 이 때문에 '준비는 당연한 건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거고, 뻔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사람들이 의문부호를 갖게 만들면 안 된다."
 
a  문재인 대통령의 당시 호우대비 지시 (편집=서지혜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당시 호우대비 지시 (편집=서지혜 기자) ⓒ 충북인뉴스

 
- 2020년 9월 태풍 마이삭 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 위험지역 통제 ▲ 해상 선박 피해 방지 ▲ 대응 인력에 대한 안전조치 ▲ 사전 대피 등 비교적 구체적으로 알렸다.


"이번과 비교가 많이 된다. 그 정도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상식적인 지시다. 이번 대통령 지시사항이 문재인 대통령 정도로만 작성됐어도 문제가 안 됐을 거다. (공문을 작성하는 과정에 개입한) 관료들은 설령 정권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전에는 대통령 지시사항이 어떻게 하달됐는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번엔 문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당연히 참고할 수 있는 건데 참고도 안 한 것 같다.

공문으로 나간 지시는 돌이킬 수 없다. 대통령은 지시를 간결하게 할 수 있고, 모든 지시사항이 형식을 갖춰서 나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들이 지시의 목적이나 큰 틀에서의 지시 대상, 대응 방법 등은 보완해야 한다고 본다."

- 전직 대통령들의 지시사항을 연구하고 내린 결론은.

"대통령마다 중요시하는 우선순위가 다르고,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 지시사항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노무현·이명박 대통령의 지시 스타일이 합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지시사항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인상적이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자세하게 지시를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비교해도 지시사항이 더 길었고, 스스로 지시를 내리기 전 여러 전문가에게 자문하는 등 공부를 한 것이 역력히 드러날 정도였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시사항 이행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노 대통령보다는 지시사항이 짧고 간결한 대신 지시한 내용에 대해서 집요하게 반복해서 확인했다. 그러니 지시사항이 길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공무원 입장에서는 '그냥 나온 지시가 아니구나' 하면서 어떻게든 지시사항을 이행하려 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원래 기업인이었기 때문에 공무원, 관료에 대한 통제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물론 어떤 대통령이 더 낫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시사항이 너무 길어도 행정의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 즉, 간결해도 메시지는 분명해야 한다. 지시사항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노 대통령이, 지시사항 이행과 관련해서는 이 대통령이 앞섰다. 두 대통령의 지시 스타일이 합쳐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대통령 지시사항이 그전엔 전자관보에 공개되다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부터 공무원만 볼 수 있게 바뀌었다.

"미국은 대통령 일정과 발언을 모두 공개한다. 대통령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알아야 국민도 의사 표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대통령 지시사항이 폐쇄적으로 운용되다 향후 정책으로 공개되면 그때는 돌이키기 어렵다. 국민이 주권자가 아니라 뒤늦게 정책을 통보받는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 지시사항은 일반에게 공개하는 쪽으로 복원되어야 한다.

대통령 지시사항이 공개되면 정책 방향성에 대한 국민들의 논의도 활성화될 것이다. 더해, 이번 한 줄 지시사항 같은 일은 줄어들 것이다. 물론 순간적이고 즉흥적으로 나오는 대통령 지시의 특성은 계속되겠지만 적어도 공문으로 나가면서는 보다 구체화할 거라고 본다. 16글자보다는."

[관련기사]
교육청·지자체가 배포한 '대통령 지시사항'... "이런 공문 처음 봐" https://omn.kr/29ctu
윤 대통령 '16글자 지시사항'과 대조되는 문재인 특별지시 https://omn.kr/29d1v  
#대통령지시사항 #윤석열 #공문 #지시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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