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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 처벌법 있었다면 지금 내 딸 있었을텐데"

딸 잃은 어머니의 국민청원에 8만명 동의... 22대 국회 '교제살인' 끊어낼 수 있을까

등록 2024.07.05 13:56수정 2024.07.0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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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과 전 남자 친구의 폭행으로 숨진 이효정씨의 어머니, 전 남자 친구의 살인으로 숨진 나금주씨와 나정은씨의 아버지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가정폭력 및 친밀한 관계 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발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거제에서 오늘 새벽에 올라왔습니다. 올라오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여길 올라오고 있는지, 왜 여기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내 딸은 누가 죽였는지. 21대 국회에서 교제폭력처벌법을 통과시켰더라면, 지금 제 딸은 제 옆에 있지 않았을까요."

검은 마스크에 검은 옷차림을 한 어머니는 딸 고 이효정씨의 죽음을 되짚으며 국회가 지나친 법의 빈자리를 상기했다. 5일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의 '가정폭력 및 친밀한 관계 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발의 기자회견장에서다. 

피해자 어머니 "뇌 파먹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만드는 악질 범죄"

딸이 전 남자 친구인 가해자의 무차별 폭행으로 목숨을 잃은 것은 지난 4월 10일. 딸의 죽음 이후 그는 "효정이 엄마"로 국회 국민 동의 청원에 '교제 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을 제기했다. 딸의 죽음 전후로 맞닥뜨린 헐거운 법 체제를 바꿔야,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효정이 엄마'의 국민 청원은 지난달 14일 시작, 청원 4일 만에 5만 명을 달성해 위원회로 회부됐고, 5일 현재 8만 명에 육박하는 국민이 청원에 동의했다. 청원 기간이 오는 14일까지인 만큼, 그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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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제폭력 관련 제도 개선 요청에 관한 청원'이 5일 오전 10시 30분 기준으로 8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 국민동의청원 갈무리


효정씨의 어머니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금 제 딸을 죽인 가해자는 상해치사, 주거침입, 스토킹 죄로만 기소돼 있는데 상해 치사는 죽일 의도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죽였다는 뜻"이라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제 딸은 가해자의 폭행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났지만, 그런데도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딸의 죽음 이후 목도한 것은 '흔한 범죄'로 이어지는 교제 살인 범죄의 현실이었다. 어머니는 "효정이가 가고 나서도 뉴스를 보니 계속 교제 폭력, 교제 살인으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기자회견 이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이 범죄가 악질적인 이유는 사람을 완전히 피폐하게 만들어 끝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면서 "뇌를 다 파먹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만든다"고 했다. 

교제 살인으로 두 딸을 잃은 2020년 당진 자매 살인 사건의 피해자 아버지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법이 21대에서 못했으면 22대는 꼭 필히 통과돼 억울하게 돌아가시는 분들이 없도록 해주셨으면 좋겠다"라면서 "너무 가혹한 세상에 살고 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한번 돌아봐 주시라"고 강조했다.

이날 법안 발의를 발표한 정춘생 의원은 "효정씨는 가해자 김씨의 폭행에 무려 11차례 경찰 신고를 했지만, 모두 처벌불원으로 사건이 종결되며 피해자 보호를 받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렀다"라면서 "21대 국회에서 교제 폭력 범죄에 대한 임시 조치 등 피해자 보호제도가 마련됐다면 제2, 제3의 효정씨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강압적 통제 거절=결별 시도=죽음' 이 고리를 끊는 법
 

정춘생 의원 '가정폭력 및 친밀한 관계 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전부 개정안 발의 ⓒ 유성호

 

정 의원이 이날 발의 계획을 밝힌 '가정폭력 및 친밀한 관계 폭력 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전부개정안은 가정폭력에만 한정된 피해자 보호 범위를 교제 관계처럼 '친밀한 관계'까지 확대했다. 다른 가정폭력 범죄와 마찬가지로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 범죄에도 보호 조치가 적용될 수 있게 하고, 보복 우려 때문에 발생하는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반의사불벌죄 적용을 배제한다. 


무엇보다 친밀한 관계 폭력의 특징인 '강압적 통제 행위'에 대한 피해자 보호 조치를 법으로 규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지난 6월 4일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이 발표한 <'거절 살인', 친밀한 관계 폭력 규율에 실패해 온 이유> 보고서에도 담겼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강압적 통제 행위를 처벌하는 영국, 아일랜드, 호주의 입법례도 함께 소개됐다. 

허 연구관은 이 보고서에서 "상대를 동등한 주체로 인식하기보다 소유물, 통제와 조종의 대상으로 여기는 가해자의 특성은 (피해자가) 통제를 거절하는 시도인 '결별'에서 피해자가 살해당할 수 있는 매우 뚜렷한 위험 요인"이라면서 "여성 살해가 통제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결별의 맥락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피해자가 처한 위험을 감지하는 기준이 달라져야 함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허 연구관은 또한 "교제 및 배우자 관계에서 폭력을 '사적인 일'로 경미하게 치부하며 중재와 화해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낡은 관행이 오늘날의 비극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친밀한 관계 폭력의 본성을 제대로 반영하는 법률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제언했다.

효정씨의 어머니는 기자회견 말미, 다시 22대 국회를 향해 간청했다. 

"내 눈앞에서 안 보일 뿐 지금 현재도 아마 누군가 죽고 있고 누군가는 당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딸, 손녀, 조카... 누가 당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단지 말을 못할 뿐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입니다. 사람 목숨보다 귀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루빨리 이 법안을 통과시켜주시면 좋겠습니다."
#교제살인 #친밀한관계 #교제폭력 #22대국회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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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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