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병원 순례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등록 2024.07.04 16:29수정 2024.07.04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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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슨 의사가 아프다고 하는 다리는 한 번도 보지 않고 약을 준다고 하노? 1년 가까이 병원에 왔지만 아픈 곳은 보지 않고 묻기만 하고 의사 맞나?"


어머니는 쓸개 빠진 여자다. 10여 년 전에 쓸개를 제거했다. 갑자기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배가 아프다며 동네 병원에 갔더니 쓸개 속에 담석이 쌓였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했다. 콩알만 한 돌멩이가 수두룩 나왔다. 

7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계실 때 어머니가 병원에 가서 입원까지 한 적은 아마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폐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한 아버지 곁에는 늘 어머니가 계셨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어머는 간병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어머니는 아플 틈이 없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어머니는 자주 아프다. 올해 우리 나이로 88살, 구십을 앞둔 노인이다. 치과는 기본이고 피부과, 외과, 신경과, 안과 등 동네는 물론 주변 병원을 순례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녹내장이 왔다. 백내장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녹내장이라는 진단이 떨어졌다. 게다 왼쪽 눈의 시력이 많이 떨어진 데다 양쪽 눈 시력이 급격히 차이가 난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는 동네 안과의의 권고에 따라 좀 큰 병원을 찾게 되었다.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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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병원 1층 로비 환자와 의료진으로 북적이고 있다. ⓒ 이호영

 
녹내장과 뇌경색, 또 얼마 되지 않아 하지정맥류까지 왔다. 다리가 무겁고 걷기가 힘들다는 말씀을 자주 하더니 결국 하지정맥류 진단을 받았다. 전문 병원에서는 곧바로 수술을 해야 하고 최신식 치료법으로 수술을 하자고 권하면서 수술비가 800만 원이라고 했다. 하지만 큰 병원 외과에서는 수술을 해도 완전히 낫지 않으니 수술보다는 약물 치료와 다리 들기 등 운동이 좋겠다고 해서 지금도 치료 중이다.

안과와 신경과 2곳으로 시작한 엄마의 병원 순례가 1년 전부터는 외과까지 3곳으로 늘었다. 3개월에 한 번씩 병원을 찾아 3개 과를 모두 다녀야 한다. 혈압을 재고 의사의 물음에 대답하고, 안과에서는 시력 측정부터 광학 검사 등 받아야 할 검사가 많다. 또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오후 1시에 들어가면 5시가 넘어서야 병원을 나온다. 또 약국에서 약을 받아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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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병원 진료실 어머니는 3개월 주기로 외과, 신경과, 안과 진료를 받는다. ⓒ 이호영

 
"약을 왜 이리 많이 주노? 약이 많이 남아있다. 또 줄텐데, 우야노?"


3개월치 약을 받았지만 약이 남는다고 하소연이다. 매일 분명하게 먹었는데도 약이 이렇게 많이 남았다며 병원에서 잘 못 준거라는 말씀이다. 

"그럼 병원 가서 물어보지요. 잘 못 준 건지, 아니면 엄마가 매일 드시지 않은 건지를요."


진료를 받으면서 의사에게 약을 너무 많이 줘서 남았다고 푸념을 하니 의사는 날짜에 맞게 3개월치 딱 맞게 드립니다고 대답한다. 의사의 말에 엄마는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한다. 진료실을 나오면서도 더 많이 줬다고 말씀한다. 

7월 진료를 마치고 10월 진료를 예약한다. 다음 진료에는 추가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보고 처방을 조절하겠다고 의사가 말한다. 약이나 진료가 더 늘어나지 않고 이대로 갔으면 하는 바람이 사라지면서 또 어떤 다른 결과가 나올지 몰라서 가슴이 답답하다.

평생토록 병원에 다니면서 쓰는 돈 대부분이 60대 이후라고 한다. 아버지의 긴 폐암 투병에 비하면 어머니의 투병은 별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더 큰 문제이다. 구십에 가까운 연세에 얼마나 더 사실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몸져 눕게 되는 투병 생활이 생긴다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연세에 비해 아직은 정정하시지만 언젠가 병실에 누워야 할 날이 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조금 아프시면 바로바로 동네 병원을 가셔야 합니다. 그게 돈을 적게 들이고도 내 몸을 아프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큰 병원에 입원하면 비용도 많이 들고 아프기도 더 아프니까요, 빨리 병원에 가시는 게 아들, 딸 도와주는 거라예."

어머니 병원 순례의 마지막 말은 늘 이렇게 끝난다. 아픈 걸 참지 말고 곧바로 동네 병원에 가셔서 진료를 받아야 어머니도 좋고 우리도 좋다고.

"안다. 요즘은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 간다. 내 다리에 힘이 있을 때 가야지, 그게 맞다."

어머니의 병원 순례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를 일이지만 당신 발로, 당신 힘으로 병원에 다닐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어머니 #쓸개 #대형병원 #뇌경색 #녹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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