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이 떨어진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픽사베이
저는 1993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입학 후 첫 학기에 구내서점에서 '민법총칙'이라는 전공서적 한 권을 샀습니다. 책을 사서 가방에 넣고 집에 왔습니다. 집에 와서 책을 펼쳐보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정신이 몽롱한 것이 아니라 읽을 수 있는 글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 한자어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게 많을 줄 몰랐습니다.
"社會生活의 準則은 '當爲의 法則'이다. 當爲의 法則에는 法, 道德, 慣習, 宗敎 등이 있다. 이 中에서 法에 槪念에 關한 定說은 아직 없지만, 法은 그것을 지킬 것이 社會力(國家權力)에 의하여 强制되는 것이다."
이 한 문장을 읽기 위해서 한자사전을 10번은 넘게 펼쳐야 했습니다. 읽기는 읽었지만 이해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민법총칙 책에는 조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글자가 한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한글로 된 문장도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에 이 문장을 읽고 타당하다고 말하는 것인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다 알다시피 한국 법학은 역사적으로 일본 법학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는 근대법 체제 도입 과정에서 일본 법을 모법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민법, 형법, 상법 등이 그대로 시행되면서 한국 법체계의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 법의 영향은 계속되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많은 한국 법률 용어가 일본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예를 들어, '검사', '변호사', '재판', '소송' 등의 용어는 일본식 한자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공소시효', '증거능력', '소유권' 등도 일본 법학에서 유래된 용어들입니다.
앞서 말한 "하지 않을 수 없다"와 같은 표현도 일본어의 문법적 구조와 표현 방식을 반영한 것입니다. 일본어에서는 이중 부정 표현을 통해 강한 긍정의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 일반적인데 일본어의 '〜しないわけにはいかない'라는 말을 그대로 해석해서 우리말로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어린이집 교사가 올린 문해력 관련 사연
법학을 공부하기 전에 법학을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전 입학과 동시에 법학이라는 학문을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냈습니다. 겨우 졸업은 했지만 전 어디에 나가서 법학과를 졸업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저와 같은 한자가 보기 싫고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디지털 시대는 혁명과도 같은 편리함을 주었습니다. 인터넷, SNS, 모바일 기기, 유튜브 등의 플랫폼은 사람들의 생활 양식을 바꾸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소통과 정보 습득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가져왔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문해력 저하입니다.
최근 한 어린이집 교사가 올린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글에 따르면 "보통 'OO를 금합니다'라고 하면 당연히 금지한다는 뜻이지 않나. 그런데 일부 학부모들은 '금'이 좋은 건 줄 알고 '가장 좋다'라는 뜻으로 알아듣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우천 시 OO로 장소 변경이라고 공지하면 '우천 시에 있는 OO 지역으로 장소를 바꾸는 거냐'라고 묻는 분도 있다"라며 "섭취·급여·일괄 같은 말조차 뜻을 모르고 연락해서 묻는 분들이 예전에는 없었는데 요새는 비율이 꽤 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 어린이집 교사는 "단어뿐만 아니라, 말의 맥락도 파악을 잘 못한다. 'OO 해도 되지만, 하지 않는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라고 했더니 '그래서 해도 되냐, 안 되냐'라고 문의한 학부모가 네 명이었다"라며 "최대한 쉬운 말로 풀어내서 공지해도 가끔 이런다"라고 불만을 이야기했습니다.
문해력 논란은 이번 만이 아닙니다. 한 유명 유튜브 업체의 '모집인원 0명' 논란, '사흘'을 4일로 이해한 네티즌의 에피소드, '심심한 사과'에 대한 해석의 문제 등 여러 가지 웃지 못할 사건들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언론들에 의해서 재소환된 지난해 3월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한 한양대 국어교육과 조병영 교수의 방송 내용도 다시 화제가 되었습니다. 조병영 교수는 "수학여행 가정통신문에 '중식 제공'을 보고 '왜 중국음식을 제공하냐, 우리 아이에게는 한식을 제공해 달라'라고 했다며 요즘 세대의 문해력 논란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문해력이 떨어진 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