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속 한 장면길로길로가다가, 권정생 글/한병호 그림
한울림어린이
하필 IMF 직후였고 대량 실업 사태가 벌어지고 있던 1998년,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그해 5월 1일, 내가 있던 곳은 서울 종로 한복판이었다. 인파에 밀려 지하철 역사를 오르내리고 이름 모를 고가다리 아래를 뛰기도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포함한 새내기들을 에워싼 선배들과 함께였다. 선배 중 한 명이 돌아가면서 친구들 얼굴에 담배 연기를 뿜어댔다. 주르륵 눈물이 흐르는 동시에 마른기침이 터져 나왔다.
담배 연기가 최루탄 연기에 눈이 따가워지는 걸 막아준다나 어쩐다나. 입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웃지 못했다. 함께 걷고 뛰며 구호를 외치던 거리의 사람들, 나만큼이나 어려 보이던 슬픈 눈빛의 전경들이 흑백영화 속 한 장면처럼 흘러갔다. 함께여서 좋았고 함께여서 서글펐던 그 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2만여 노동자와 실업자, 대학생, 시민들이 연대했던 메이데이 집회는 '폭력 시위'란 이름으로 저녁 뉴스를 장식했다. 청년 실업 사태에 울분을 토하는 대학생들과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폭력으로 막아선 건 집권 첫해 김대중 정부였다.
내 삶만 소중한 시대라지만, 타인의 눈물에서 우린 자유로울 수 없다
한 시절을 함께 했던 선배들과 친구들은 이제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금방이라도 달라질 것만 같았던 세상이 여전한듯 보이는 것처럼, 사회 속으로 흩어진 우리들은 원래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여전히 누군가는 작은 바늘 하나를 주워들고 묵묵히 걷는가 하면 또다른 누군가는 이 사회의 틀에 저를 깎아 맞춘다. 어떻게 살아가든 누가 누굴 탓하랴. 개인의 삶이, 행복이 무엇보다 소중한 시대라고들 한다.
그러는 사이 내 아이가 먹을 밥을 해주는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이 폐암으로 스러지고 장시간 노동과 폭언, 폭력에 열여덟 열아홉 살 현장실습생이 목숨을 끊는다. 이웃 동네에선 친족 성폭력을 견디다 못한 꽃다운 생이 꺾였다는 소식이 들리고, 송전탑을 세우기 위해 벼를 갈아엎는 포크레인이 부모와 같은 세대인 농민들에게서 피맺힌 눈물을 퍼낸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 누군가의 피눈물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더 그렇다.
그래서 권정생은 늘 '함께'를 말했던 게 아닐까. 바늘 하나 주워 도깨비 마술을 부린다고 해서 갑자기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함께>라면 조금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거기 혼자 있지 말고 '함께 함께' 하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