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진<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 배운기 지음. 루아크 출판.
루아크
고민은 이 질문에서 비롯됐다. "자본주의적 삶을 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세상이 원하는 만큼 공부하고 노력한 다음 그 능력을 바탕으로 밥벌이 하는 삶을 말할까?" 언뜻 평범해 보이는 말이지만, 이렇게 사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한 채 '실패'를 거듭하는 게 우리 삶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합리성과 효율성을 전제로 한 과도한 경쟁과 성공 논리가 공동체의 온정을 빼앗아간 지 오래 되었다. 승자독식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공존공생은 헛된 구호가, 패자부활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런 까닭에 사회의 경쟁 논리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정의가 이제는 재구성되어야 할 때다.
'전화위복'이나 '새옹지마'는 그 뜻을 뒤집어보면 인간의 삶 속에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고통이 함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개개인의 삶에서 이 네 가지는 늘 균형을 잃는다. 평범한 개인의 삶은 불행 속에 어쩌다 행복이 존재하는 서사 구조일 것이다.
불행 속에 행복이 존재하는 서사 구조. 그 대표 사례가 바로 연재의 주된 소재거리인 회생·파산제도가 아닐까 싶다. 많은 이들이 이 제도를 통해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한계채무자가 경제적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회생파산제도의 진정한 존재 의의다.
회생·파산제도는 단순히 채무를 탕감해주는 제도가 아니라, 한계채무자에게 새출발의 기회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회경제적 상황 변화에 예민한 채무자들에게는 사회의 관용에 따른 '디폴트 세팅'이 필요하다. 한계채무자가 자본주의적 삶의 기본값을 다시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선순환 작용이 바로 회생파산제도의 역할이다.
경제적 한계상황에 처한 이들을 실패자라 규정하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강한 바람으로 나그네의 옷을 억지로 벗기려 하는 것과 같다. 다정한 손길로 그들을 보듬음으로써 스스로 갱생 의지를 갖게 하는 것은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스스로 옷을 벗게 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이런 고민과 생각 끝에 모아진 글들이 이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현장에서 바라본 회생·파산에 관한 고민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고 있던 어느 날. 그 흔적의 몇 꼭지를 보고 어느 출판사 루아크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세상의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고 인문과 건축, 노동과 인권 등 진보적 시선을 가지고 자신만의 출판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당찬 분이었다.
삼복더위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 초, 휴가기간 중에 합정동 카페에서 천 대표님을 만나 그 자리에서 바로 합의했다. '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로 책을 만들기로. 그런 연유로 금년 2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23개의 기사에 7개 꼭지를 더하여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서울회생법원의 회생·파산 업무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발품 팔아 기록했다. 업무 담당자들이 느끼는 불편함과 고뇌, 채무자들의 고통과 희망, 채권자들의 불만과 억울함을 있는 그대로 전하려 했다. 더 나아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참된 정치가 이뤄지고 선한 정책이 만들어지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까지 담았다.
파커 J.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참된 정치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정치라는 것이 모든 사람을 위한 연민과 정의의 직물을 짜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버릴 때, 우리 가운데 가장 취약한 이들이 맨 먼저 고통을 받는다."
이 문장은 머리보다 가슴에 먼저 와 닿는다. 이때의 정치는 시민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는 연민의 도구이자 정의의 선언이었다. 모름지기 시민이 국가와 법제도를 위해 존재하지 않고, 국가와 법제도가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이 명제에 온전한 진실을 부여하지 못하는 사회는 비정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되돌아볼 수 있다면 저자로서 더 바랄 게 없겠다.
불편하지만 따뜻한 회생·파산 이야기 - 현장에서 바라본 회생·파산 업무의 두 얼굴
배운기 (지은이),
루아크,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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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교육원 교수를 거쳐 현장에서 밥벌이 중입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을 꿈꾸고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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