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토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추모단체 봉선화회가 세운 도쿄 아라카와 강 인근의 조선인 위령비에 두 손을 모은 일본 여성들. 이번 전시작품 중 하나.
장영식
지난해인 2023년 9월 3일,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 내 '1923한일추모사업단'의 대표 함인숙 목사가 주축이 되어 도쿄 아라카와 둔치에서 '간토 대학살 100주기 추도위령제'가 열렸다.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함께 모여 6661장의 넋전을 달고, 양혜경(항일독립여성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선생의 넋전 춤과, 공주 상여소리 보존회에서 재연한 상여모심을 통해 희생된 조선인들을 추도하고 간토 대학살에 대한 진실규명 및 용서와 화해를 기원했다.
그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 낸 장영식 작가의 전시회가 열린다. 사진전의 제목 <넋은 예 있으니>처럼 추도위령제 동안 6661명의 가신 님들이 시공을 초월하여 바람으로 오신 듯 넋전 안에서 안식하며 장엄한 장례로 모셔졌고, 그 감동적인 순간은 도쿄와 멀리 떨어져 있는 깊은 산장에서의 화장으로 이어졌다.
장 작가는 넋전들이 정화되어 하얀 재로 승화될 때까지의 전 과정을 카메라에 담아, 소리 없는 오열이자 100년의 긴 침묵을 깨는 추도 행위를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참 부끄러운 전시다. 100년 동안 한일 그 어느 정부도 제대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침묵해 온 죽음들이다. 2023년 9월 도쿄 아라카와강 추도위령제 4박 5일의 여정을 마치고도 두 번 더 일본을 방문하여 조선인들이 대거 학살된 스미다강을 찾아 새벽에 하염없이 두 차례나 강변을 걸었다. 그럼에도 가신 분들의 한 맺힌 죽음을 사진에 담지 못했다"며 안타까이 회상했다.
이어 작가는 "이 작은 사진전이 100년 전 조국과 고향을 떠나 타국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갔던 넋들을 위로하며, 일본이 저지르고 조작한 과오를 현재의 시점에서 역사적 기억으로 불러들임으로써 망각의 역사가 지배하는 왜곡된 현실을 성찰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한일 양 국민들 사이의 역사적 인식의 경계를 좁히고, 미래를 향한 화해와 용서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고 덧붙였다.
장영식 작가는 존재의 가장자리에 놓인 작고 미미한 것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을 담아내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밀양 할매들의 이야기, 탈핵운동, 노동자들의 힘든 삶의 현장, 그리고 환경과 평화를 외치는 이들의 모습 등을 그만의 렌즈에 담아 전하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경계지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순간들을 섬세한 사진과 글로 보여주면서, 내면의 양심을 일깨우는 따뜻함을 전한다. 현장 속에서 그의 생생한 시선은 단절된 현재와 과거를 이어주는 소통의 힘을 보여주는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우리 이웃들에게 정의와 희망의 장을 펼쳐 더 나은 미래를 소망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