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경근.이현준 열사 투쟁 백서지난 2017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마필관리사 박경근, 이현준 열사 투쟁백서
박진현
말이 좋아서 그 일을 한다는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는 어떤 노동을 했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는 'X 같은 마사회'라며 '진짜 썩어빠진 마사회. 시궁창처럼 썩었다'라고 유서에 남겼다. 2017년 5월 24일 고 박경근 마필관리사와 같은 해 8월 1일 고 이현준 마필관리사의 연이은 죽음은 경마장의 충격적인 현실을 우리 사회에 알렸다.
최저임금에 가혹한 장시간 노동
"2004년에 경마장이 문을 열었을 때 마필관리사에게 책정된 임금이 400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팀장으로서 마필관리사 중 가장 높은 임금을 받았는데 월 118만 원을 받았어요. 팀원들은 9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받았어요."
고광용 지부장의 주장이다. 그 많은 돈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마필관리사에게 직접적인 사측은 조교사다. 하지만 조교사 역시 마주와 위탁관리계약을 맺는 관계다. 마주 위에서 마사회가 있다. 고용구조가 복잡하고 다단계다.
마사회는 19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했다. 개인마주제는 마사회 직원이었던 조교사, 마필관리사, 기수를 각각 자영사업자, 비정규임금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리해 관리하는 구조로 바꿨다. 관계의 외주화로 마사회가 가진 전권은 오히려 막강해지고 책임은 면피할 수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 달에 최저임금만큼의 급여만 겨우 받는 노동자들이 일주일에 100시간을 넘는 가혹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는 증언도 있다.
"그 당시 제가 새벽 3시 30분에 일을 시작했어요. 퇴근은 저녁 7시예요. 그런데 맨날 퇴근하는 게 아니고 일주일에 많이 퇴근하면 3일이에요. 4일은 여기서 자요. 주 52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일주일에 100시간은 넘게 일했어요."
지금은 어떨까. 과거에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최저임금도 채 받지 못했다면 지금은 최저임금에 맞춰 임금을 받는다. 고 지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주 52시간 기준으로 280만 원 정도라고 하니, 과거와 비교해 많이 올랐지만 기본 시급은 최저임금 수준이다. 그 이상 받는 것은 경마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여전히 무한경쟁 구조 속에서 고통 받는 것이 마필관리사다.
부상을 달고 사는 마필관리사
마필관리사는 길들지 않은 말을 훈련하고 관리해 경주마로 투입하는 일을 한다. 이 과정에서 말에서 떨어지고 밟히고, 채이고, 끌리는 사고로 인해 상해를 당하고 장애 판정까지 받는다. 산재로 인한 후유증과 만성적인 근골격계 질환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일하다 다치는 마필관리사들 중의 상당수가 골절을 당한다는 게 고 지부장의 설명이다. 말들은 야생에서 돌아다니고 풀을 뜯어 먹으면서 자유롭게 사는 동물이다. 이런 말들을 한 평 조금 넘는 마방에 가둬놓고 키우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말이 사람을 차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광용 지부장은 "말은 오랜 기간 사람들하고 생활해도 주인을 알아보지 않습니다. 말은 가축이 아니에요. 매일 밥 주고 목욕시키고 진료해줘도 말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뒷발로 차버리거나 앞발로 찍어버려요. 그래서 산재는 언제 어디서 당할지 몰라요"라고 말했다.
마필관리사는 높은 산재율로 고통받고 있지만, 과거에 산재 신청을 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또, 2017년 이전 마필관리사는 일상적인 폭행에 시달렸다는 게 노동자들의 증언이다.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지금은 병원 가서 치료도 하고 예전보다 좋아졌다. 다치면 산재나 공상 처리 중 하나를 선택할 수도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변화도 죽음으로 마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한 이들에 의해서 이뤄질 수 있었다.
2017년 박경근 마필관리사와 이현준 마필관리사의 죽음 이후 조교사협회를 통해 마필관리사를 고용하기로 노사 합의를 이뤘다. 하지만 협회를 가입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조교사들이 생겼다. 고광용 지부장은 "이들 조교사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마필관리사로 쓰지 않는다. 그러면서 제 2 노조가 부산경남경마공원에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조교사협회가 현재 마필관리사의 직접적인 사용자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는 조교사들이 생긴다는 것은 합의 위반일 뿐 아니라, 어렵게 만든 집단적인 노사관계를 해체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는 게 1 노조 측의 주장이다. 현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가 제 1 노조다. 마필관리사 다수는 민주노총 조합원 소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