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가 식사치료를 시작하면서 직접 만들어 기록해 나간 '식사일기' 노트.
이선민
힘겨우면서도 몇 년 간 놓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을 떠나오며 저는 처음으로 제 오랜 병을 직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혼이라는 결정이 어떤 난데없는 용기를 일으킨 건지, 저는 전에 없던 적극성으로 삶에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제 오랜 섭식장애에 대해 부모님과 터놓고 처음 이야기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충격을 받은 부모님, 그리고 거기에 제가 다시 상처를 받으며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다행히 회피도 포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섭식장애가 없는 삶'을 꿈꿔보기 시작했습니다. 2023년, 뜻이 맞는 두 명 친구와 함께 '섭식장애건강권연대'를 만들었습니다. 13년간 혼자 지켜온 비밀을 털어놓고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기대감이 망설임을 눌렀습니다. 새 동반자가 된 지금의 아이 아빠는 당시 제 삶의 지원군이자 동료가 되어 주었고, 참 많은 응원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가까운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에 힘입어 처음으로 세상에 섭식장애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에서 첫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가 열렸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빠르게 답을 얻어가는 기분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내가 이 모습으로 설 자리가 세상에 생길 수도 있겠구나!'
부푼 기대가 생겼습니다. 섭식장애를 절실히 고민했던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이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설렜던 것은, 그때까지 약물치료 외엔 대안을 몰랐던 제게 새로운 길들이 보이기 시작한 일이었습니다.
새롭게 나타난 길들, 거기서 얻은 용기
제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는 '용기'였습니다. 자기연민으로 상처를 핥고만 있는 대신, 모든 걸 수용하며 나를 인정하고 마주해 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저는 병에 대해 찾아보고, 새 치료법도 알아보며 적극적으로 섭식장애를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내 모습 자체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영상 브이로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https://www.youtube.com/@sunmeanlee1311).
물론 그 와중에도 수차례 넘어졌습니다. 응급실에서 눈을 뜬 날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날 이후 뭔지 모를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전과 달리 삶이 온전하게 느껴졌고, 놀랍게도 오랜 시간 저를 좀먹어 온 우울이 눈에 띄게 사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몸을 추스른 후, 저는 식사치료를 시작하며 지난 13년 동안 잃어버렸던 일상의 감각을 다시 배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당사자로 식사치료를 처음 갔을 때의 긴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지요. 그날 저는 밥을 '다' 먹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평소 끼니를 먹듯이 1인분의 밥과 반찬을 다 먹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13년 만에 처음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세 끼니를 챙기며 식사량을 늘려가 몸무게도 조금씩 회복됐습니다. 폭식이나 구토가 바로 기적 같이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지금도 폭식과 구토 습관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지만, 이제 자연스럽게 하루 두세 끼니의 밥을 소화시키고 간식도 먹습니다. 불안하거나 초조해 하는 법 없이 식사하며 웃고 떠들 수 있습니다. 제겐 놀라운 변화입니다.
그러다 지난해 6월에 접어들 무렵, 새 생명이 생긴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실은 임신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고민이 컸습니다. 아직 섭식장애 증상도 심하고, 경제적인 여유도 없고, 누군가와 삶을 꾸리기에는 무리 아닌가 걱정이 컸습니다.
스스로 아직 너무 나약하고 자격이 없는 건 아닐지 하는 생각만 맴돌았습니다. 그런데 실은 너무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무슨 일을 하든 '그것밖에 모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외곬인 저는 늘 내 사랑과 관심이 필요한 존재를 열렬히 원한 건지도 모릅니다. 제 동반자는 저를 믿어주었고 매번 큰 확신을 보여주었기에, 그와 함께 아이를 길러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