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 대학수능, 통합형으로 실시 발표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 발표에 참석해 선택형 수능 폐지 및 과목 통합과 관련해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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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성적 산출방식 변경의 의미
개편안에 따르면 고교 내신성적은 고1~고3까지 모든 학년에 절대평가를 도입한다. 그리고 상대평가를 병기하되, 상대평가 9등급을 5등급제로 바꾼다.
우선 상대평가를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꿈으로써 내신성적 1등급 비율은 크게 늘어난다. 9등급제에서 1등급은 상위 4%였지만, 이제 상위 10%까지 1등급을 받기 때문에 2.5배 확대된 것이다. 2등급도 이전에는 누적 비율은 상위 11%까지였는데, 개편안에 따라 누적 비율 상위 34%까지 확대되어서 2등급의 비율도 3배 이상 늘게 된다. 한 학교의 1/3 이상의 학생들이 상대평가 내신성적을 2등급 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내신성적의 동점자가 많아지게 되는데, 동점자가 많다는 뜻은 '변별력'이 없다는 뜻이다. 즉 내신성적 상대평가를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5등급으로 듬성듬성 평가하게 되면 대입 선발을 위한 자료로서의 의미는 없어진다.
한편, 이번 개편안은 고1~고3까지 모든 학년의 내신 성적을 절대평가로도 산출해서 상대평가 5등급과 동시에 표기하도록 하게 했다. 절대평가는 90점 이상이면 A, 80점 이상은 B... 이런 방식으로 5단계로 성적을 표기한다.
그런데 이렇게 절대평가로 성적을 산출하면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할 것이고, 따라서 A 학점을 받는 학생들은 대단히 많아질 것이다. 어떤 교사가 문제를 어렵게 내서 90점 이상 성적을 얻은 학생이 적어진다면, 학부모들로부터 "학생의 앞날을 가로막느냐"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신성적을 대입의 선발자료로 쓰면서 절대평가를 할 때 필연적으로 '내신 부풀리기'기 나타나는 이유다.
내신성적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논란의 핵심 문제
우리나라에서는 내신성적의 절대평가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내신성적 절대평가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로 상대평가의 폐해를 지적해왔다. 상대평가는 '급우들 간에 배타적 경쟁심을 조장하여 협동학습을 저해'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또 다른 이유는 '과목 선택권의 왜곡'과 관련되어 있다. 상대평가를 하게 되면 학생이 적성이나 진로를 고려해서 과목을 선택하기보다는 성적을 받기 좋은 과목을 선택하게 하는 경향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상위 4%만 1등급이 나오는 9등급 상대평가에서는 수강생이 적은 과목의 경우 1등급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된다. 최근에는 인구 규모의 감소 추세와 관련해서 규모가 작은 학교에서는 1등급이 거의 나오지 않거나 매우 적어진다는 점도 강조한다.
그러나 사실 내신성적 산출을 상대평가로 할 것인가, 절대평가로 할 것인가의 논란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내신성적을 대학 입학전형의 중요한 자료로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다.
만일 내신성적을 대입 선발을 위한 자료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절대평가로 산출하든, 상대평가로 산출하든 전혀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 심지어는 과정평가를 하든, 교사별로 평가하든 그것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절대평가로 성적을 산출하면서 '대입 전형 자료' 즉 다른 학생과 우열을 가리는 비교자료로 사용하려고 할 때 발생한다.
'갑' 학교의 K 선생님이 절대평가 방식으로 어떤 학생에게 A 학점을 주고, '을' 학교의 L 선생님도 절대평가를 통해서 어떤 학생에게 A 학점을 주었다고 했을 때, 이 두 학생의 A 학점이 '동일한 학력 수준'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여건에서 '갑' 학교에서는 A 학점을 받은 학생이 15%가 되고, '을' 학교에서는 8%밖에 안 된다면 더더욱 서로 다른 학교에서 부여한 A 학점을 동등하게 비교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 못한 일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핀란드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핀란드에서는 내신성적을 절대평가로 산출한다. 그리고 과정평가도 적용되고, 교사별로 평가한다. 그런데 전혀 논란이 생기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핀란드에서는 대입 선발 경쟁에서 내신성적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핀란드의 대입 경쟁률은 우리나라보다 더 높다).
애당초 핀란드에서 내신성적 평가의 목적은 '대입 선발 경쟁에 필요한 자료를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학업을 장려하고, 학생의 자기 평가의 전제 조건을 개발'해서 '학생의 학습을 촉진하는 것'에 있다. 즉 핀란드에서 내신성적 산출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도구로서 의미만 있는 것이다(핀란드 교육문화부, '2015년 중등학교 교과 과정의 기본 사항').
우리나라에서 내신성적을 반영해야 하는 이유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내신성적을 대입의 중요한 자료로 반영할 필요가 있나?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학력고사 체제가 등장한 이후 40년 이상 내신성적을 대입에 반영해왔고, 또 그럴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공감이 형성되어 있다.
우선 내신성적을 반영함으로써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수업과 생활의 충실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이는 고교 운영의 정상화에 기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지역 균형과 관련되어 있다. 지역 불균형이 심하고 교육 자원도 서울과 수도권 및 대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조건에서 전국적인 수능 시험 성적분포만을 따지면 지방의 일반고 학생들의 '경쟁력'은 취약하다. 따라서 전국적인 시험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면 지역 불균형은 더 심각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반면에 내신성적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것은 지방에 있는 일반고 학생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지역 균형에 기여한다. 전국 어디에나 내신성적이 탁월하게 우수한 학생들은 있고, 이 학생들에게 명문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당연히 지방 일반고뿐만 아니라 모든 일반고에게 기회가 넓어진다는 점에서 고교서열화를 완화하는 효과도 있다).
이런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 내신성적을 대입에 반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면 앞서 말한 이유로 절대평가로 성적을 산출해서는 안 된다. 또한 듬성듬성한 상대평가를 통해 '변별력 없는 내신성적'을 산출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