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인형양말로 만든 인형
이상자
나는 양쪽 부모님을 보면서 노후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일찍부터 계획을 세워놓았다. 또 각 마을 학교에서 어르신 학생들 수업을 하면서 노후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더 분명해졌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온갖 것을 갈아 자식들을 키우고 뒷바라지한다. 먹는 것, 입는 것, 모든 것을 자신들에게는 아끼며 자식들을 위해서 바친다.
엊그제의 일이다. 조카딸이 딸 하나를 낳아 키우는데 먹는 것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을 구입해 직접 만들어 먹이고, 여섯 살인 아이에게 엄청난 양의 책을 읽어주고 읽히며 키우고 있다. 이 아이가 책을 많이 접해서인지 주말마다 체험을 많이 다녀서인지 나이에 맞지 않게 똑똑해 깜짝 놀랄 정도다. 조카에게 아이를 잘 키우고 있어 고맙고 대견하다 칭찬했다. 그랬더니 이렇게 톡을 보내왔다.
"고모를 갈아서 아들 셋을 훌륭하게 잘 키우셨잖아요. 대단한 우리 고모. 아이를 낳아 키워보니 자식을 키우는 일은 부모를 갈아서 키워야 한다는 걸 느꼈어요."
내 엄마도 그랬다. 심지어 당신은 빨랫비누로 세수해도 딸에겐 최고급 화장품을 사주셨다. 잠도 안 주무시고 일해서 자식들 가르치셨다. 그리고 일꾼을 두고 살며 9대 종부로 수많은 사람 거느리고 사셨다. 노후에 걷지 못하게 되자 내가 쏟은 만큼 자식들의 보살핌이 못 미친다 생각도 들고 당신을 위해 살지 못한 세월이 후회스럽기도 하여 지독하게 외로워 하셨다.
애들 할머니, 무엇을 하던 자식이 늘 함께 해야 했다. 자식은 대한민국에서 둘째라면 서운할 일등 효자였다. 한잠 자고 있는 새벽 두 시에 당장 오라고 부르면 즉시 달려가는 아들. 무슨 요구를 해도 '예' 하고 곧바로 실행하는 아들.
걷지 못하실 때는 매일 하루 세끼 불고기 3컵, 과일 3컵, 요플레 3개씩 하루도 안 거르고 10년 넘게 수발한 아들. 이동에 문제가 없을 때도 늘 자식이 옆에 비서처럼 있어야 했다. 자식으로서 개인 삶은 없었다. 오로지 효자로서의 삶만 존재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나는 결심했다. 자식이라도 자식의 인생이 있으니 괴롭히는 것은 하지 말자고. 혼자 남아 외로워도 서운해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려면 일과 취미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보람 있는 일을 찾은 것이 '초등 문해교사'다. 배우지 못한 어르신들 일상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치매 예방에도 도움 되는 일이다.
더하여 외로움도 덜어줄 수 있으며 그분들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일. 이보다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자식들만 바라보며 살지 않게 하는 삶. 나로 인하여 어르신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며 기쁨을 느끼게 된다면 족하다.
취미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