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 교관 원병상 회고록』일제강점기 최대의 독립군 기지 신흥무관학교의 졸업생으로 교관을 지낸 원병상의 회고록
민족문제연구소
여기에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한 사람이 원병상이다. 그는 신흥무관학교 4년제 본과 3기생으로 입학해 3년간 생도반장을 맡았으며, 졸업한 뒤에는 류허현 대사탄소학교에서 교사로 복무하며 신흥학우단 총무부장과 서기를 역임했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5월에는 모교 교관으로 부임하여 지청천 등과 함께 밀려드는 애국청년들의 훈련에 진력했고, 해방 뒤엔 신흥무관학교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신흥학우단의 부활과 신흥대학 개교에 앞장섰다.
원병상은 교관으로서, 누구보다도 신흥무관학교의 전모를 가장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의 회고에 의하면 상당한 자료들을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격동의 시기를 지나면서 모두 멸실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이를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의 기억을 되살려 시대를 증언하는 수기 두 편과 회고록 한 권을 남겼다.
수기는 <신동아>(1969년 6월호)와 <독립운동사자료집 제10집 : 독립군전투사자료집>(1976년 2월)에 실린 '신흥무관학교'란 제목의 약사(간략한 역사)이며, 회고록은 자필 원본의 복사본만 전해지고 있는 <백암 원병상 회고록-피눈물로 얼룩진 36년 유랑 생애>이다. 원병상은 한국전쟁 와중이던 1951년 10월경부터 1973년 1월 1일 별세하기 직전까지 오랜 기간 회고록 집필에 공을 들였다. 식민지배와 독립운동, 분단과 동족상잔이라는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시대의 산 증인으로서, 반드시 그 고난과 극복의 역사를 후세에 남겨야겠다는 일념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는 원병상이 남긴 회고록과 수기 두 편, 그리고 참고자료들을 새로이 편제해 최근 <신흥무관학교 교관 원병상 회고록>을 내놓았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자 다수가 참여해 치밀한 교열을 거쳐 주석을 붙이고 사진과 지도 등 시각자료를 수록한 교주본(校註本: 해석을 달아 풀이한 책)이다. 나도 여기에 참여했다.
이 책에는 원병상의 출생·가계, 만주 망명과 신흥무관학교 시절, 영농과 사업, 팔로군 점령 후의 상황과 탈출, 환국 후의 혼란상, 군 복무와 한국전쟁 등 장년에 이르기까지의 개인사와 시대상이 소상히 서술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신흥무관학교의 설립에서부터 그 변화과정과 교육내용, 생활상과 여러 사건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담겨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 사료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신흥무관학교의 졸업생이자 교관이었던 원병상이 이를 상당 부분 복원했기에, 그나마 오늘 우리가 신흥무관학교의 일면이라도 살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망 이후 만주로 망명한 독립지사들의 신산한 삶이나 이주민 정착과정의 고투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는 점도 이 책의 가치를 높여준다. 강제병합 이후 뜻있는 많은 이들이 국권회복을 위해 생면부지의 이역으로 기약 없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남부여대 정든 고향을 떠난 원병상 일가는 만주에 정착하기까지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초를 겪어야 했다. 이들은 풍토병과 연속되는 재해, 경신참변, 친일 부역자들의 악행, 만보산 사건, 대도회 동란 등 온갖 수난을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굳건히 터전을 일궈나갔다.
만주 건너간 동포들 삶의 이야기
이 책은 만주로 이주한 우리 동포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 즉 이주자들의 삶에 관한 절절한 회고이기도 해서 읽는 이들을 한층 더 숙연하게 만든다.
또 이 책에는 주목할 만한 여러 내용이 담겨 있다. 만주 지역에 벼농사를 확산시킨 주역이 바로 우리 동포였다는 사실, 또 그 개척 과정의 간난신고가 어떠했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일제의 패망 이후 만주의 상황이나 일본인이 겪어야 했던 고초, 팔로군의 만주 점령과 조선의용군의 진입, 인민재판과 숙청, 탈출과 귀환과정 등도 희귀한 증언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