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분기 전기, 가스요금이 1년 전보다 30% 넘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5월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1분기 전기, 가스 및 기타 연료 물가지수는 135.49(2020년=100)로 전년 동기 대비 30.5%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였던 1998년 1분기(41.2%)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건물의 가스계량기 모습.
연합뉴스
에너지 공공요금 인상 논란이 시작된 지 반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전문가나 언론의 논지는 바뀌지 않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기·가스요금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요금 인상은 대기업과 시민을 구분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이른바 에너지 공공요금의 '무차별적 인상론'이다.
지난 5월 31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
공공요금 인상, 반대만이 능사 아니다"라는 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하는 우리나라 전기·가스 요금이 국제 가격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까?
국제 에너지 가격의 평균 상승분은 국내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어떤 에너지를 어떻게 수입하는지에 따라, 그리고 국내 에너지 산업 구조에서 누구와 어떤 거래를 하고, 어떤 정산 과정을 거치는지에 따라 한국가스공사(가스공사)와 한국전력공사(한전)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다.
에너지 위기와 전환에 바람직하지 않은 제도와 산업 구조는 외부의 충격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증폭시킨다. 우리나라의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와 민자 발전 제도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나
천연가스 직수입은 주로 천연가스 발전소를 소유·운영하는 민자 발전사가 자가 사용 천연가스에 대해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제도다. 가스공사가 전담하던 수입을 민영화와 시장개방 정책의 일환으로 에너지 민간 기업에 허용해 2005년부터 SK, GS, 포스코 등이 직수입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저렴할 때는 직수입을 하고, 비쌀 때는 직수입을 포기하고 가스공사로부터 천연가스를 공급받는 수익 극대화 전략을 취하는 데 있다.
2014년까지 5% 미만에 불과하던 직수입 천연가스의 물량 비중이 2015년부터 증가해 2020년에는 22%로 크게 늘었다. 당시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매우 저렴해 직수입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이럴 때 민자 발전사들이 천연가스의 직수입을 늘린다.
우리나라에 필요한 전체 천연가스의 의무공급자인 가스공사 입장에서 보면, 직수입 물량이 빠져나가면서 저렴한 가격에 천연가스를 계약할 기회를 상실한다. 직수입 기업이 유리한 상황에서만 '체리 피킹'을 하기 때문에, 가스공사가 수입하는 천연가스의 가격이 구조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 기업의 경영 성과나 경쟁의 효과로 민간 대기업이 가스공사보다 천연가스를 더 싸게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직수입 제도가 존재하는 한, 가스공사의 수입 가격을 적용받는 발전 공기업을 포함한 다른 기업과 일반 시민의 가스요금은 전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가스요금은 우리나라 전력시장에서 전력도매가격(SMP, 민자 발전사와 한전 간 전력 거래 정산에 기초가 되는 가격)의 상승에 영향을 주고, 높아진 전력도매가격은 민자 발전사의 수입을 증가시킨다.
반면 한전의 전력구입비가 상승해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고, 높아진 전기요금이 다시 다른 기업과 시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한전과 가스공사의 적자가 누적되고, 가스요금과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높아지는 나선형적인 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국제 에너지 가격이 낮을 때나 높을 때나 동일하게 작동한다. 다만 에너지 가격이 낮을 때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지금처럼 에너지 가격이 높을 때는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원료비는 통제 불가능한 비용 아니다
3대 천연가스 직수입 민자 발전사인 SK E&S, GS EPS, 포스코에너지의 2022년 영업이익 합계는 약 2조 3000억 원으로 2020년의 약 6000억 원 대비 4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민자 발전사와 도시가스사를 운영하는 SK E&S의 영업이익은 2020년 2412억 원에서 2022년 1조 4191억 원으로 6배 가까이 껑충 뛰었다. 에너지 위기 상황에서 가스공사와 한전에 비용을 전가하고 이익을 챙긴 것이다.
이들이 떠넘긴 비용이 영업이익으로 드러난 2조 3000억 원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상승한 천연가스 수입 가격과 전력도매가격에 반영된 부분은 이들의 영업이익이 아니라, 가스공사와 한전의 적자나 상승한 에너지 공공요금에 포함되어 있다. 에너지 위기 국면에서 직수입과 민자 발전 제도가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를 누적시키고 국민경제 전체에 커다란 부담을 주고 있다.
전기·가스 요금 무차별 인상 불가피론의 주요 근거가 에너지 원료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살펴본 것처럼 천연가스 수입 구조와 민자 발전사를 통해서 에너지 공기업의 적자가 커지고 결국 에너지 공공요금 인상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만약 천연가스 직수입 제도가 없었다면, 민자 발전사에 특혜를 주는 전력시장이 없었다면, 공공요금 인상 압력은 훨씬 낮을 것이다. 따라서 한전의 전력구입비와 가스공사의 천연가스 원료비에 전가되는 비용을 제대로 따져 물어야 한다. 지금 이 비용은 공개되지도 검증되지도 않고 있다. 우회적 민영화로 발생한 원료비 상승은 우리가 '통제 불가능한 외부 비용'이 아니다.
무차별적 인상이 불가피하고 바람직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