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원사지 석조. 4톤 정도의 물을 담아 쓰던 돌 그릇
최장문
보원사에 대한 기록은 신라 말기 최치원이 남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등장한다. 웅주(공주) 가야산 일대의 보원사는 의상을 계승한 화엄종 10대 사찰의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고려시대 보원사는 법인국사 탄문(900-975)과 관련 있다.
고려태조 왕건은 왕후가 임신을 하자 탄문으로 하여금 백일 기도를 하게 하였고, 이렇게 하여 낳은 아들은 고려 4대 왕인 광종이 되었다. 광종은 중·고등학교 때 한국사 시험에서 자주 보았던 왕이다. 과거시험과 노비안검법을 통한 개혁정치와 왕권강화로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태조 왕건에 이어 혜종-정종-광종까지 고려 초기 4명의 왕이 모두 탄문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탄문이 국사(國師)가 되어 가야산 자락의 보원사로 옮겨갈 때 광종이 왕후와 백관을 데리고 전송하였으며 어의를 보내 병을 살피게 하였다. 탄문은 다음해 3월에 가부좌한 채 입적하였으니 그 때 나이 75세다. 광종 또한 탄문이 죽은 지 2개월 후에 죽으니 참으로 기막힌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