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우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
아작
SF를 읽기 좋은 핑계
김원우의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그래서 좋은 소설이었다. 제목부터 성탄절과 만국이다. 등장인물이 중간에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도 있다. 만국의 언어로 존재하는, 만국의 단결을 말하는 그 노래가 맞다. 그리고 물론 이 소설에서도 의사소통의 문제가 생긴다.
소설의 핵심 요소는 자몽과 외계인과 크리스마스다. 어느 날 서울 한복판에 외계 우주선이 나타나고, 거기서 외계인이 내린다. 모습이 둥그렇고 주황색인 바람에 그들에게는 '자몽인'이라는 별명이 붙는다. 처음 내린 외계인만 주황색이고 다른 이들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자몽인'이라는 말은 성공적으로 정착한다.
이들은 내리자마자 한국어로 한마디를 말한다. 분명히 한국어지만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다. 그리고 인간의 반응이 실망스러웠는지 이들은 금세 무반응 상태로 변한다. 몸이 달은 사람들은 그럴싸한 전문가가 있으면 아무나 외계인 연구 캠프로 부른다.
주인공 '나영'은 과거에 자몽을 영어라고 잘못 말한 뒤로 삶이 뒤집힌 사람이다. 나영은 자몽으로 망신당한 이후 10년 동안 자몽의 모든 것을 파고든다. 그러다 획기적인 논문을 여러 편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는다. 자몽 논문 빼고는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던 나영이 자몽인 캠프에 소환되는 이유다. 소설은 천연덕스럽게 나영을 이리저리 내돌리며 자몽과 외계인을 연결한다.
자몽은 포르투갈어가 일본을 거쳐 한국에 자리 잡은 형태의 말이다. 영어처럼 생겼지만 관련이 없다. 나영이 자몽을 멋대로 생각했듯, 사람들은 자몽인을 자기 식대로 본다. 자기 언어로 말을 걸고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려 든다. 하지만 지구에서 쌓인 온갖 언어 규칙이 외계인에게 쉬이 통할 리가 없다. 뭐라도 해보려면 문법과 지식을 내려놓고 생판 기초부터 다시 형성해야 한다. 아주 단순하게 압축한 진심만이 몰이해를 뚫고 상대에게 도달한다.
그리고 소설을 읽다 보면, 외계인 앞에 잔뜩 모인 사람들의 말에서 반복되는 기원 하나가 보인다. 모두가 다른 식으로 말하지만 그럼에도 공통되는 메시지 하나가 있다. 표현은 달라도 의미는 비슷하다. 현실에서 다양한 표현이 하나의 인사말, 하나의 기원으로 정형화될 때와 같이, 작중의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 소설은 새로운 인사가 형성되는 과정을 말한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은 SF 작품을 추천하는 소설이다. 도서관 사서가 SF 소설을 쥐여주고, 인물들이 자꾸 <스타트렉> 농담을 한다. 이 소설에서는 크리스마스가 상징하는 사랑과 이해, 그리고 SF를 좋아하는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다. 혹시 12월 25일이 지나서 크리스마스 소설 읽기가 저어된다면, 1월 2일이 미국에서는 전국 SF의 날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날은 황금기 내내 방대한 글을 발표한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생일이다. 새해에 새로운 SF를 읽기에 좋은 핑계다. 해피 홀리데이.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
김원우 (지은이), 아작(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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