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문
연합뉴스
서울에 대한 뿌리 깊은 동경은 어쩌면 지역 토산물 가운데 최상품을 나랏님에게 바치던 옛 진상 문화에서 연유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최고의 진상품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을 터이다.
통신과 교통의 발전이 서울과 지방의 경계를 낮추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순진하다 못해 사기극에 가까웠다. 물리적 거리가 좁혀지자 서울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지방의 양분을 빨아들이며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할 만큼 비대해졌다. 쭉정이가 된 지방에 더는 백약이 무효할 지경이다.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 진학을 권유한 필자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수능 만점이라는 그 놀랍고 특별한 재능은 서울에 발을 들이는 순간 크립토나이트 앞에 선 슈퍼맨처럼 평범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는 부산도 아닌 그저 경상도에서 온 어느 유학생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니 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 진학을 권유한 본질은 경계를 뛰어넘는 리더가 되어 서울과 지방의 벽을 허물어 달라는 당부였다(물론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내 의도를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몰랐을 것이고 알았다고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 칼럼은 필자가 5~6년 전에 있었던 에피소드를 지난 1월 부산의 한 지역신문 칼럼으로 쓴 글이다.
그때 만난 그 수능만점자가 어느 대학에 진학할지는 오롯이 자신의 판단이고 자신의 몫임을 모르지 않는다. 필자는 그의 결정에 영향을 줄 만한 관계도 되지 못할 뿐더러 그럴 의도도 없었다. 다만 주제넘은 조언일지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택지' 하나를 던졌을 뿐이고, 이미 쓴 대로 그 자리에서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변화와 문명의 진보는 너무도 당연한 것들을 당연시 여기지 않은 작은 외침과 시도들이 쌓이면서 비롯되었다. 수능 만점자가 서울대에 가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나, 이것을 당연시 여기지 말아달라는 권유였을 뿐이다.
사회적 격차는 동서고금 어디에나 존재했고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있어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서울과 지방은 그저 한낱 점에 불과할 만큼 가깝지만, 우리에게 그 간극과 서열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장벽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 내 말은 서울대학교에 진학해 서울에 뿌리 내려 개인의 꿈을 이루는 것도 소중하지만, 수능만점이라는 그 특별한 재능을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활용해달라는 당부였다. 서울 대신 지방을 선택하라는 조언은 단순히 서울이냐 지방이냐의 문제에 얽매이지 말고, 그 너머에 펼쳐질 장대한 비전을 봐달라는 뜻이었다.
그렇다고 서울이 아닌 지방에 남아야 그 비전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서울과 지방이 조화를 이루는 큰 그림을 그리려면 수많은 점과 선이 필요한데 수능만점자의 붓질이라면 밑그림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몽상에 불과하지만, 수능 만점자가 지방에 남는 것이 대단한 이슈가 되지 않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 잘못일 수는 없다.
* 독자 의견에 해당 기사 원문이 지난 1월 부산의 한 지역 신문 오피니언 란에 실린 글이라는 지적이 있어 확인 후 기사를 수정·보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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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만점자에게 지방대학을 권했다가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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