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주택가 베란다로 찾아온 라쿤
김중희
자기집 들어가듯 우리집 지붕을 오르는 라쿤
이른 아침, 전날 야근하고 퇴근한 사람처럼 부스스한 모습으로 베란다에 출몰한 라쿤은 세 마리였다. 베란다의 나무 기둥을 붙들고 날렵하게 차례로 올라가던 라쿤들은 마치 자기네 집 들어가듯 자연스레 지붕으로 올라갔다.
몇 년 전 라쿤이 지붕을 망가뜨리고 큰아들 방에 빗물이 새고 나서 지붕 수리를 하고 라쿤 방지템으로 철판을 붙였다. 라쿤이 올라가다 미끄러지도록 말이다. 그런데 라쿤이 그 철판을 밀림의 왕자 타잔이 나무를 타듯 그렇게 잘 올라갈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 세 마리의 라쿤을 보고 심란해진 우리는 곧바로 지붕 수리 전문 업체에 연락을 했다.
9년 전 주택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우리는 한국의 빌라 같은 '보눙'에 살았다. 그때까지는 라쿤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했다. 라쿤은 귀엽게 보이는 외양과는 다르게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말썽꾼으로 정평이 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주택의 빗물 배수관을 나무 타듯 올라가 지붕을 뜯어 놓는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지붕 고치는 일을 하는 기술자를 닥데커(Dachdecker)라고 부른다. 라쿤이 뜯어 놓은 지붕을 닥데커를 불러 수리하면 손상 상태에 따라 적게는 몇 천 유로 많게는 수만 유로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 막대한 손실을 입지 않기 위해 가정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라쿤이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방지판을 곳곳에 설치하는 것 뿐이다. 주택가를 지나 다니다 보면 라쿤이 지붕 위로 올라 가는 길목인 빗물을 내보내는 배수관 그리고 벽면 등에 투명한 방지판이 붙어 있는 집들을 자주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