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기자들Q] ‘순위의 함정’ 여론조사 보도, 어디까지 믿으십니까?(7월 16일자 방송)
KBS
먼저 여론조사의 통상적 오류를 유발하는 첫 번째 문제점은 조사 샘플 집단의 규모다.
이번 대선의 전국의 유권자 수는 대략 4300만 명이다. 여론조사회사와 언론사들은 1~2천명 내외를 조사하여 결과를 발표한다. 국민 2~3만 명 중 한 명쯤 뽑아서 조사하는 셈으로서, 일단 표본 수가 너무 적다. 현재 대한민국의 전체의 시군구는 200곳 정도인데, 여기에 남녀(2)×세대(5)×계층(3)을 고려하면, 최소 표본수가 6000명은 돼야 한다. 그래 봐야 한 도시에서 30명 조사하는 셈이다. 물론 통계학자들은 1000 샘플만 넘으면 된다고 주장한다. 한 지역구에서 의원을 뽑는 총선 여론조사 샘플수나 전국에서 대통령을 뽑는 대선 여론조사 샘플수나 비슷하다. 표본 수를 늘리려면 돈과 시간이 더 들어간다.
그 다음은 표본 추출방법이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표본추출의 임의성에 있다. 모든 유권자가 샘플로 추출될 확률이 동일해야 한다. 대면으로 조사해야 하지만 요즘은 인터넷, 휴대전화, 유선전화를 이용한다. 모두 한계가 많아 섞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부패한 고기를 섞어서 요리한다고 신선한 음식이 될 수는 없다. 가령 유선전화의 경우 조사시간에 집에서 전화를 받는 사람으로 한정된다. 직장에 다니지 않는 주부나 노년층이 주요 응답자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특정한 정치성향을 갖는다. 응답률도 3%~20% 내외다. 십중팔구는 답변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유권자가 응답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자료를 제대로된 여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조사자의 중립성도 문제다.
한국 언론사는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해 노골적인 '성향'과 '의도'를 가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언론사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기도 하다. 그 상품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언론사니까 비용은 당연히 언론사에서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비용이 대체로 얼마나 들어가는 것인지, 그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언론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중소 규모 여론조사회사는 별다른 힘이 없다. 태생적으로 을의 위상을 가질 수밖에 없다. 유력언론사의 여론조사 대행으로 홍보효과를 노리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력 언론사들은 막강한 '갑'의 위치에서 자신의 '요망사항'을 더 잘 반영해주는 조사기관과 손을 잡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언제나 여당, 야당 모두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불만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세력이 여론조사에 개입한다는 비판이 난무하기도 한다.
여론조사의 오류 사례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히는 2016년 4월 총선 관련 여론조사 보도(대부분 반대로 예측)를 예를 들면, 언론사들이 관심이 많고, 개입하려 하고,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성향이 높을수록 여론조사의 정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언론의 정치적 성향은 어떠한가? 여야 후보에 대해 한국의 언론사들이 중립적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2016년 미국 대선보도는 또 다른 중요한 사례다.
2016년 11월 8일 대선 직전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은 20곳이 넘는 주요 신문과 방송의 여론조사 보도에서 최소 4%에서 11%, 평균 7.5%를 앞섰다. 이를 근거로 한 승리확률도 71%에 달했다. 주요 여론조사회사 11곳 중 9곳에서 힐러리의 우세를 예측했지만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물론 미국 대선은 주별 선거인단 결과에 따라 '승자독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당시 트럼프 후보와 미국의 주요 언론사는 최악의 갈등 관계였다는 점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정세균-오세훈 후보가 대결한 지난 2016년 4월 13일 총선 종로구의 경우 여권 대권주자 오세훈 후보에 대한 미디어의 관심은 하늘을 찔렀다.
- 3월20일 중앙일보, 오세훈 45.1% / 정세균 32.6%(12.5% 오세훈 승)
- 3월23일 KBS/연합, 오세훈 45.8% / 정세균 28.5%(17.3% 오세훈 승)
- 3월29일 SBS, 오세훈 48.6% / 정세균 37.3%(11.3% 오세훈 승)
그러나 투표결과는 정세균 52.6% / 오세훈 39.7%으로 정세균이 12.9% 차이로 낙승하는 정반대의 결과였다.
지금까지의 사례를 살펴 보면 여론조사결과와 선거결과가 크게는 심지어 30.1%까지 차이가 난 경우도 있다. 여론조사회사의 무모한 조사결과이자 언론의 무모한 '개입'의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면 여론조사가 왜곡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여론조사보도와 밴드웨건 효과라는 것이 있다. 과거 미국의 선거에 유행했던 악대마차(bandwagon)와 관련하여 이론화된 것이다. 투표에서 뚜렷한 주관 없이 대세에 따르는 경향을 말한다. 레밍(나그네쥐)신드롬과도 관련이 있는데, 다수로부터 멀어지면 안 된다는 심리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다. 가령 시대에 따른 유행의 변화를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베스트셀러라니까 책을 사보고, 맛집이라니까 먹으러 가고, 먹방-겜방-뷰티방이 유행이라니까 너도나도 동일한 일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둘째는 여론조사 보도와 침묵의 나선이론이다. 사람들은 무리로부터 고립되는 것에 대한 공포가 강하다. 인류가 진화과정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고립을 피하며 협동노동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계여론조사학회 회장을 지낸 바 있는 독일의 언론학자 노엘레 노이만(1916-2010)은 여론조사와 관련하여 '침묵의 소용돌이 이론'을 주장한 바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고립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다수 의견'과 자신의견이 불일치할 경우 침묵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요컨대 미디어가 주창하는 '다수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다. 왕따 공포증에는 아이 어른이 없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소수후보의 지지율은 더 낮게 나오고 미디어가 띄우는 후보의 지지율은 실제보다 더 높게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가설이다. 여론의 획일화나 양극화 같은 왜곡의 발생 원인이 공포를 느낀 유권자의 '침묵의 소용돌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는 여론조사 보도와 사회적 선망편향이다. 공적 미디어 인터뷰나 조사에서 자신의 견해보다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견해를 표출하는 경향으로서 여론조사를 실패로 이끄는 원인 중에 하나다. 대중매체 비평이나 대중문화 비평이 대체로 계몽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비평가는 자신의 인상을 관리하여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심리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강준만(정치평론가·사회과학자·언론인) 전북대 명예교수는 2016년 미 대선에서 언론과 여론조사회사가 최악의 패배자가 된 이유는 사람들의 사회적 선망편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석한다.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샤이 트럼프'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왜 미국대선에서 최악의 패자는 여론조사가 되었나", <인물과 사상>, 2017년 1월호).
한국언론 여론조사보도의 문제점
"그때 그 조사 아니었으면 내가 여기까지도 안 왔다."
대선 출마 선언 이튿날인 지난 6월 30일, 국회 기자실에 인사차 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세계일보> 기자들을 만나서 한 말이다. '대선주자 윤석열'을 만든 게 여론조사임을 시인한 것이다. - <한겨레> 2021년 8월 24일자
공직선거법에 여론조사 보도 발표 시기에 제한이 있고, 부실조사에 대해 중앙선관위에 고발할 수는 있지만, 실효성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론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전문가집단이나 공공 조직의 검증이 부재할 뿐더러, 부실 여론조사에 대한 규제가 약한 상황에서 거대 언론사에 상대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소규모 조사회사들은 '주어진 비용'(혹은 스스로 조달한 비용)과 시간 범위에서 '가능한' 여론을 '창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론조사기관은 조사방법(샘플수, 신뢰구간, 오차범위, 응답률) 등을 포함한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중앙선관위에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보수화된 주류 언론 대다수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차범위에 있을 경우에도 '우세'니 '질주'니 하는 경마중계식 보도를 일삼으며 여론조사 결과를 무기로 노골적인 특정 후보 편들기와 진보세력 죽이기(고 노무현 대통령 이후 진보후보 죽이기 반복)에 올인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기자들은 경마장에서 경마를 중계하듯이 오로지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누가 앞서고 누가 뒤지느냐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경마중계식 언론의 보도에는 당연히 사안이나 이슈와 관련한 '왜?'가 없다. 왜 실업률이 높은지? 왜 기후가 변화하는지? 왜 기본소득이 문제인지? 왜 4차산업혁명인지? 왜 공직후보를 검증해야 하는지? 왜 청년문제가 생겼는지? 왜 젊은이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지?가 없다.
그저 "너 딱 걸렸어(I got you)"와 같이 특정 이슈 하나만 걸려들면 융단폭격식으로 보도 한다. 이는 한국 언론에서도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보도 태도로서 정파 편향성을 가진 보복성 보도나 단순한 흥미 증폭에 주력하는 보도가 주류를 이룬다. 특히 특정 후보의 여론조사 결과가 잘 안 나오는 경우 상대방에 대한 특정 이슈를 집중부각하여 결국 '전세역전', 'OOO 확장력의 한계', 'O신드롬', 'OOO 대세 확인' 등과 같이 자신들이 원하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때까지 무차별 공격을 계속한다.
선거와 여론조사 보도 규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