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은 두 번의 세찬 여름 바람과 이후 강한 비가 퍼부은 날, 바람이 지나간 이후 폭우가 오기 직전 비교적 차분한 순간에 찍었다. 뒷배경은 안개가 아니라, 그저 1분 뒤 이쪽으로 다가올 장대비였다!
Romain
비오는 여름날의 이 사진은 내게 서사적인 순간이었다. 세찬 바람과 비에 맞서며 촬영할 때 느낀 행복감과는 별개로, 이 촬영은 내게 세 가지 가르침을 주었다.
첫째, 이 나무가 뿌리내리고 있는 바위의 형태 자체가 나무 만큼이나 아주 흥미롭다는 것이다. 처음 셔터를 누르는 순간엔 뷰파인더의 제한된 시야 때문에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이 공간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 풍경의 앞에서부터 뒤에까지의 깊이가 아니라, 정면에 눈에 띄는 전경임을 이해하게 되었다.
둘째, 당연하게도 좋은 사진을 찍을 때 가장 힘든 부분은 사진기나 촬영 기술보다는, 열정적인 이 행위 자체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장면을 다시 한 번 보고, 내 앞에 정말로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게 무엇인지 인식하면서 이를 어떻게 담아내느냐였다. 이 과정은 굉장히 힘들 수 있다. 특히 혼란스러운 환경이라면 더 그렇다. 내가 진지하게 훈련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셋째,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은은한 느낌의 사진을 그리워했는지다. 서울은 활기가 넘치는 도시고, 매 순간 밝으며 시끄럽기에 나 또한 그러한 분위기에 젖어들곤 했다. 하지만, 여기 이 프레임 안의 멋진 모습을 보고난 뒤 나는 마음 속으로 내가 그동안 이 소박함과 고요함, 안개가 수반하는 이 모든 분위기를 갈망해왔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날씨가 매서워지면 또 오겠다고 다짐했다.
이 자연이 내 속마음을 읽은 건지, 지난 겨울엔 몇 번의 큰 눈을 선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