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18일 서울 서초구 고등법원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유성호
평범한 직장인이 코로나19의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갑자기 자가격리에 들어갔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김 부장, 이 과장이 갑자기 출근하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아마도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은, 자기가 맡은 일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취할 것이다.
본인이 하던 일은 최대한 정리해서 다른 직원에게 넘기고, 결정이 필요한 사항은 누군가에게 권한을 위임해 둘 것이다. 본인 한 사람이 자리를 비움에 따라 회사 운영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책임 있는 조치를 다 하는 것, 그게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다.
직원이 아닌 임원이 갑자기 자리를 비우게 된다면 어떻게 행동할까? 임원이 된 만큼 책임감도 커지는 게 일반적이다. 직원에 비하면 실무적으로 일할 것은 상대적으로 적을지 몰라도, 결정을 해야 할 사항들이 더 많은 임원은 그 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아 회사가 중요한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직원보다 더 신경 써서 방법을 찾을 것이다.
원격으로 결정을 하거나, 그것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면 본인 권한을 위임하는 등 대비책을 만들 것이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
이재용 사면론? 이재용이 무책임하다는 이야기인가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에 대한 경제계와 정치권의 주장을 들어보면,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로 마치 삼성그룹 전체가 멈춰버린 느낌이다. 이 부회장의 공석으로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가 걸려있는 M&A나 전략적 투자 의사결정도 이뤄지지 않고, 글로벌 스타급 인재영입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이 부회장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동원되지 못해 글로벌 영역 확장도 이뤄지지 않고, 고객 확보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재용 부회장이 감옥에 있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2020년 연간 매출액 236조 원, 연간 영업이익 36조 원을 낸 삼성전자가 아무것도 제대로 못 하는 회사가 됐다는 인상을 준다.
솔직히 말해보자. 그러니 이 부회장을 사면하자는 이런 주장은,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를 설립된 지 얼마 안 되는 소규모 기업 취급하는 것이다. 초창기 소규모 기업이라면 창업주나 경영진 개인 역량에 좌우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일정 규모 이상을 넘어선 기업은 몇 명의 개인의 역량이 아닌 조직의 힘으로 움직인다.
삼성전자는 10만 명이 넘는 직원이 근무하는 국내 최대규모의 회사로, 반도체·휴대전화·가전제품 등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회사다. 삼성전자 정도의 단계에 도달한 회사는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고, 10만 직원의 힘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재용 사면론'에 동원되는 논리는, 삼성전자에서 성실히 일하는 10만 직원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주장이다.
또, 이런 주장은 삼성전자의 이사회를 구성하는 경영진 전체를 무능력하고 책임감 없는 사람들로 취급하는 것이기도 하다.
책임감 없는 사람 취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