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서울숲과 고층아파트.
권우성
현재 서울의 한강변은 고급 아파트, 고층 빌딩으로 가득 들어차 소수의 부자들이 '조망권'을 독점하고 있다. 조망권을 이유로 상상하기 어려운 비싼 부동산 가격이 형성돼 있다. 한강 조망이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서 수억원의 가격 차이가 발생한다. '한강 조망권'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사유화시켜서 팔기 위해 한강변 아파트를 설계하는 건축가들은 한강변의 한자락 조망에 걸치는 아파트가 최대한 많이 나오도록 설계한다. 한강 조망권은 철저하게 상품화, 사유화 되었다.
그러나 상암동 월드컵공원은 조망권을 누리기 위해 한 푼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에 있는 강과 하늘을 감싸고 있는 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쓰레기 매립장'이라는 극한의 환경, 버려진 곳이었기에 가능했던 역설이다. 이곳이 쓰레기 매립장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자본은 순순히 모든 시민들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난지도는 원래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강 하류의 토사가 범람하여 만들어진 여의도와 같은 섬이었다. 범람원으로서 토질이 비옥했던 난지도는 농사를 짓는 농지로 주로 이용되었고, 한강변 금빛 모래사장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았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1960~1970년대의 급속한 도시화로 서울의 인구가 폭증하고 처리해야 할 쓰레기의 양이 늘어나면서, 1978년 난지도는 도시계획시설(쓰레기 매립)로 지정됐다. 이곳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 소유의 농지들은 헐값에 수용되어, 어느날 갑자기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
또 매립장 주변의 토지들도 쓰레기 매립량이 늘어남과 동시에 점차 버려진 땅, 쓸모없는 땅으로 변해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근처에 있던 서부면허시험장을 지나갈 때면, 쓰레기 악취로 인하여 코를 막고 버스의 창문을 닫고 지나다니곤 했었다. 지금은 작은 혐오 시설 하나만 들어와도 온동네에 난리가 나지만, 과거 급격한 경제발전과 도시화·근대화를 추진했던 독재 정권시절, 농지가 쓰레기 매립장이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뿐만 아니라 과거 독재정권에서는 토지 보상도 없이 멀쩡히 농사를 짓고 있던 농민들 소유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서 공단을 조성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구로동 분배농지 사건이 대표적이다. 1961년 박정희 정권은 공단을 조성한다는 목적으로 서울 구로동 일대의 땅 30만평을 강제수용했다. 농민들의 반발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은 권력기관을 동원해 막았다. 지난 2008년이 되어서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을 '국가 공권력 남용'으로 결정했고 후손들은 기나긴 소송 끝에 올해 4월 대법원으로부터 배상 판정을 받아냈다.
과거 급속한 경제발전과 근대화·산업화 과정에서 개인의 인권·재산권·생존권은 쉽게 희생되었다. 1960~1970년대에 도시계획시설 공원이나 도로 등으로 지정되어 이용할 수 없었던 토지들은 이제야 순차적으로 손실보상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1970년대의 서울의 미개발지인 농지 또는 임야와 2020년대의 고도화된 도시 서울의 토지가치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고도성장 50년의 시공을 넘나들어야 한다.
당시의 '산업화', '경제 성장'이라는 가치와 현재의 '양극화 해소', '분배를 통한 안정적 성장'이라는 시대적 가치는 언뜻 보기엔 상반된 것이 지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관계를 갖는다. 경제발전에 따른 도시의 확장으로 부동산의 용도가 변경되고, 부동산 가치에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 발전의 결과 높아진 소득 수준과 더불어 양극화가 문제가 되고 있다. 부동산 자산 격차는 양극화의 가장 원인이기도 하다.
수익지상주의에 매몰된 부동산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