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장기적으로 아예 무급 인턴 없애는 방안 모색해야"

인턴들의 눈물... 인턴 제도의 볼썽사나운 민낯

등록 2021.05.03 09:43수정 2021.05.03 11:41
0
원고료로 응원
 '꼰대 인턴'은 2020년에 방영된 MBC 수목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악의 '꼰대' 상사를 직장 부하로 다시 맞은 신입 직원의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인턴이 흔히 겪는 부당한 대우를 풍자한다. 이 드라마의 선풍적인 인기는 많은 사람이 인턴 제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꼰대 인턴'은 2020년에 방영된 MBC 수목 드라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최악의 '꼰대' 상사를 직장 부하로 다시 맞은 신입 직원의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인턴이 흔히 겪는 부당한 대우를 풍자한다. 이 드라마의 선풍적인 인기는 많은 사람이 인턴 제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MBC
 
2020년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2.6%가 인턴에 지원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 대학생들이 인턴 과정을 필수적인 취업 준비 과정으로 여기는 셈이다. 기업들은 실무 경험을 쌓음으로써 취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라고 인턴 프로그램을 홍보하곤 한다.

"정직원이 하기 귀찮아하는 보조적인 일만 주로 맡아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어요." 김진수(가명, 24)씨는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외국계 유명 제약 회사에서 3개월 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회사 측은 마케팅 인턴으로 일을 하며 실무적인 경험을 쌓을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지만 김씨가 마주한 현실은 그것과 거리가 멀었다. 이 회사에는 별도의 인턴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

김씨는 "인턴 근무기간이 끝나가는 선임 인턴에게 인수인계를 받았다"고 했다. 단기간 근무한 뒤 퇴사하는 인턴으로부터 업무를 넘겨받으니 실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김씨는 "우편물 보내기, 회의 전 커피 준비 등 마케팅과 무관한 일을 하다 보니 실제로 배운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밤을 새워 일하곤 했어요." 은지영(가명, 22)씨는 3개월간 비영리 단체에서 무급 인턴을 했다. "주말에 일을 하고 상사가 늦은 밤에 업무를 주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했다. 주 5일 근무제, 공휴일 같은 기본권조차 지켜지지 않았다.

은씨가 근무했던 비영리 단체는 "인턴 없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인턴 의존도가 높다"고 한다. 각자 다른 직책으로 선발됐음에도 모든 인턴이 대체로 행정 업무만 했다. 은씨는 리서치 어시스턴트(Research Assistant)로 뽑혔지만 한 달 반 동안 행정적 업무만 맡았다. 그는 이를 "부당하다고 여겨 처음 생각했던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인턴 의존도가 매우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무급이었기 때문에 교통비조차 받지 못했다. 은씨는 인턴을 하는 중 대학교로부터 받은 장학금에 의존해야 했다. 다른 인턴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과외 같은 활동을 병행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한 김씨 또한 잦은 야근에 시달렸다. 그는 유급 인턴이었지만 "추가 야근 수당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했다. 회사 측은 오히려 이를 당연하게 여겼다. 일과 중에 마무리하기 불가능한 업무를 주고 그것을 끝내지 못하는 것을 인턴의 탓으로 돌려 야근을 정당화한 것이다.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의 기만적 인턴 근로계약

근로기준법 2조에 따라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노호창 호서대학교 법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근로 목적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예컨대 "교수가 임금을 목적으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장한다고 해도 그가 근로자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임금을 받는 인턴은 주관적인 근로 목적과 무관하게 근로자로 간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 56, 60조에 명시 돼 있는 '연장 근로수당'(야근 및 주말 근무 수당)과 '유급 휴가' 및 근로자로서 받아야 하는 여러 가지 다른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이런 관행은 한국 사회에 너무 널리 퍼져 있어 인턴이 추가 수당 및 휴가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노 교수는 "고용주의 책임회피가 이 문제를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피해자가 직접 문제 제기를 하고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따라서 부당한 대우를 막으려면 고용주가 법을 지키도록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강력하게 법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노 교수는 "고용주가 노동법을 지키지 않으면 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만들고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무급 인턴

무급 인턴의 실태는 더욱 처참하다. 현행법령에 무급 인턴의 권리를 명시하는 조항이 없다. 이 때문에 무급 인턴은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보호를 받지 못한다. '노예'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곤 하는 이유다.

무급 인턴에게 근로기준법에 따른 법적 보호를 일부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로 최민희 의원 외 12인이 2013년 8월 1일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들 수 있다. 이 개정안은 의결되지 못하고 끝내 폐기됐다. 노 교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분류하면 보편적 보호와 멀어지고 계층화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인권이 제약된 근로자층을 합법화 시켜 오히려 노동 착취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노 교수는 법을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보다 "법을 통일화하는 것이" 노동 착취 문제를 해소하는데 더 효과적일 것이라 했다. 그는 "무급 인턴 사용에 대한 특정 기준을 만들고 이를 위반하면 인턴을 회사 근로자로 간주해 노동법상 책임(임금, 고용, 사회보험 등)을 지도록 규정하는 것"을 추천했다. 장기적으로는 아예 무급 인턴을 없애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무급을 떠나 고용주가 인턴을 값싼 노동력 정도로 취급하는 인식이 더 큰 문제다. 일을 가르치기보다는 행정적, 비서적 업무만 맡기곤 한다. 이런 관행은 인턴 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취업 연계형 인턴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28년 동안 여러 해외 대기업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근무한 고경배 써모피셔사이언티픽코리아 부사장은 채용 연계형 인턴 제도를 도입하면 "인턴에게 프로젝트를 맡겨 적절한 피드백을 줄 수 있고 인턴의 실무 능력을 평가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교육에 초점이 맞춰진다는 것이다. "인턴 입장에서는 많은 것을 배운 뒤 평가가 좋으면 취업까지 할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유능한 인재를 뽑을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인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3. 3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9명의 남성에게 아내 성폭행 사주한 남편
  4. 4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나체 시위' 여성들, '똥물' 부은 남자들
  5. 5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이창수 "김건희 주가조작 영장 청구 없었다"...거짓말 들통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