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소녀상 앞에서 제1475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열렸다. 사진은 털모자와 목도리를 한 소녀상 모습.
연합뉴스
2021년 1월 8일에 선고된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의 일본군'위안부' 전면 승소 판결(아래 '2021년 판결')이 23일 0시에 확정됐다. 일본 정부가 항소기한인 1월 22일까지 항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1년 판결'의 확정은 대한민국 법원이 국제법의 진화에 획기적으로 기여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국가가 다른 국가의 개인에게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주권국가를 다른 주권국가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국가면제(주권면제)의 법리가 적용될 수 없다고 선언한 데 그 이유가 있다.
그런데 소장 송달도 거부하고, 재판에 일절 참여하지도 않고, 항소도 하지 않은 일본 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고 반박하며 '2021년 판결'을 비난한다. 지켜만 보고 있던 한국 정부는 판결의 역사적인 의의를 살리지 못한 채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2021년 판결'이 확정된 직후에 일본 외무성이 발표한 외무대신 담화(전 위안부 등에 의한 대한민국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의 소송에 관한 확정판결에 대해)와 그에 대해 한국 외교부가 발표한 입장문(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제기 손해배상 소송 판결 관련 일본측 담화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을 중심으로, 현재의 국면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국제법 위반?
일본 정부는 "국제법상 국가는 주권을 가지며 서로 대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외국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데,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주권면제 원칙의 적용을 부정하는 판결을 선고한 것은,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에도 제시돼 있는 국제법에 명백하게 반한다"라는 주장을 편다.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에 의해 강제동원된 이탈리아인이 독일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이탈리아 법원이 국가면제를 배제한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선고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판결은, 'ICJ 규정' 제59조(국제사법재판소의 재판은 당사자 사이에서만 그리고 당해 특정 사건에 대해서만 구속력을 가진다)에 따라 '당사자'가 아닌 한국의 법원과 '당해 특정 사건'이 아닌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애당초 구속력이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주권국가의 모든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의 법리가 적용돼야 한다'는 국제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습국제법인 국가면제의 법리는 개별 국가들의 입법이나 판결 등 국가실행과 법적 확신을 통해 확인되는데, 그 국가실행과 법적 확신은 변할 수 있고 실제로 변해왔다. ICJ 판결의 대상이 된 이탈리아 법원의 판결들과 ICJ 판결 이후에 선고된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의 결정 그리고 대한민국 법원의 '2021년 판결'이 바로 국가면제 법리에 관한 국가실행이다. ICJ 판결과 충돌하는 이들 국가실행도 국제법의 일부며, 이들로 인해 국제법은 진화 중에 있다.
그 사실을 일본 정부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원칙적으로"라는 부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는 막무가내로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2021년 판결'은 국가면제의 법리라는 국제법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국가면제의 법리를 반인도적 범죄에까지 적용하면 너무나 불합리하고 부당하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다고 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2021년 판결'이 "국제법에 명백하게 반한다"라는 일본 정부의 주장이야말로 명백하게 국제법에 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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