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몬 롤딸의 첫 제빵
배현혜
옆에서 지켜본 제빵은 기다림의 작업이었다. 버터를 넣더라도 실온에 한참 놔두었다가 넣어야 하고 반죽을 해서 바로 굽는 게 아니고 1차 숙성, 2차 숙성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딸은 점점 지쳐 갔다. 오래 서서 재료를 섞고 반죽을 했다. 성격이 급한 딸은 숙성시킨다고 넣어 둔 반죽을 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아직 시나몬 롤을 만드는 과정 중 절반 정도밖에 안 온 것 같은데 딸은 돌연 이런 말을 했다.
"난, 빵은 아닌가 봐. 이쪽으로는 정말 못하겠다. 너무 힘들어. 오래 서 있어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순서도 너무 복잡해. 빵이 왜 비싼 줄 알겠어. 이제 그냥 사 먹을래."
이 말을 듣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와~ 그래도 진로체험 하나는 제대로 했네. 제빵 쪽이 적성에 안 맞다는 건 확실히 알았잖아."
그래. 진로체험이 별거겠나. 집에서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면서 알아가는 것도 훌륭하지. 엄마 잔소리에 굴복하고 빵을 만들어 보지 않았다면 제빵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중학교에 입학하면 진로체험을 위해 자유 학기제를 실시한다. 자유 학년제를 하는 학교도 있다. 이번 1학년들은 코로나 19의 여파로 학교를 거의 가지 못했다. 당연히 학교에서 야심차게 준비해 둔 각종 진로체험이나 프로그램들을 할 수 없어 아쉬웠다.
진로체험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떤 일에 소질은 있는지, 무슨 일이 적성에 맞는지 등 진지하게 고민하며 자신의 꿈을 찾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역으로 무엇이 맞지 않는지, 어떤 것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지 등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찾아냈다는 면에서 딸은 훌륭한 진로체험을 했다. 남들이 쉽게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일도 많은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이 흥미를 갖는 일은 조금 다른 쪽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반죽의 양이 계획했던 것보다 늘었기 때문에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은 빵이 나왔다. 문제는 우리 가족 모두 빵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남편과 나는 예의상 한두 개 정도 먹었다. 빵이 너무 딱딱했고 달았다. 정작 그 빵의 창조자인 본인조차도 한두 개 먹고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다. 결국 시나몬 롤은 며칠 동안 랩에 쌓인 채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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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도 파노라마로 하늘을 즐길 수 있는 군산 어딘가에서 '기껏해야 대단한 것 없이 다만' 깨작깨작 나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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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왜 비싼 줄 알겠어, 그냥 사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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