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마을 숙소는 청소년 수련 시설로나 쓸 수 있을 정도로 투박하게 지어졌는데, 휴락은 처음부터 눈높이를 높게 맞췄다.
고재열
그 실험의 무대로 삼은 곳 중 한 곳이 바로 남원 운봉의 동편제마을이다. 동편제마을은 판소리 동편제의 창시자 가왕 송흥록의 생가가 있는 동네다. 이곳 마을영농협동조합에서 정부 지원을 받아 마을숙소와 오픈 키친을 만들었는데 다양한 여행 실험을 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우리 농촌의 미래를 개척하려면 미래를 위한 포석이 있어야 한다. 그 포석은 투자에서 나온다. 그 투자가 효율적이려면 트렌드와 맞아야 한다. 트렌드와 동떨어진 투자는 자칫 짐이 되어서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남원 동편제마을 휴락은 미래를 위한 포석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전범이라 할 수 있다. '도시보다 더 도시같은' 경험을 구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시인들은 도시를 떠나 전원에 와서도 도시를 구현하고 싶어한다. 샤워는 할 수 있어야 하고, 화장실은 깔끔해야 하고, 벌레는 방에 들어오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도시의 삶에 최적화 되어 있는 현대 도시인들이 요구하는 '최소 도시'라 할 수 있다. 보통의 마을 숙소는 청소년 수련 시설로나 쓸 수 있을 정도로 투박하게 지어졌는데, 휴락은 처음부터 눈높이를 높게 맞췄다. 그래서 휴락을 남도 여행의 베이스캠프로 활용하고 있다.
휴락은 단순히 숙소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대여하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곳이다. 요즘 도시에서도 모임을 할 때 자신들만의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을 대여해서 파티를 열곤 한다.
휴락을 점유하고 몇 번의 여행 파티를 열어보았는데 이곳을 중심으로 남원(지리산)에 살롱문화를 구축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인숙 동편제마을영농조합 위원장이 공간을 마음껏 연출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서 몇 가지 실험을 해보았는데 여행자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처음 휴락을 보았을 때는 위치가 좀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딱 봤을 때 풍경이 좋다 싶은 곳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휴락은 동편제마을 언저리에 논과 밭, 논과 마을, 논과 숲의 경계에 있었다. 마을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 간섭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원경은 좋았지만 근경은 다소 산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을 예닐곱 번 드나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휴락은 독특한 공간감을 선사했다. 마을의 일부이면서도 마을과 적당히 분리되어 있다. 사계절의 변화를 휴락을 둘러싼 농작물의 변화로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시골 마을이 주는 포근함이 있었다. 시골 출신인 필자에게는 더욱 그랬는데 마치 논 한가운데 있는 인도네시아 리조트들을 연상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