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5년 동안 야근·주말 근로에 대한 추가수당을 받은 적이 없다.
김승혁
지난 11월 한 달간 A씨의 야근 당일 근로 시간을 계산해보니, 하루 평균 13.4시간을 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1일 근로 시간(휴식 시간을 제외한 8시간)을 훌쩍 넘은 수치다. 회사와 합의했더라도 1주간 연장 근로 시간이 총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는데, 결국 이는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광고업계에서 이러한 근무 형태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근로자들은 야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A씨에게 광고대행사 임금체계에 관해 물었다.
"광고업계는 대부분 포괄임금제로 계약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근로계약 시 급여에 야근 수당을 포함하기 때문에 새벽까지 근무하더라도 추가로 지급되는 수당은 없습니다. 식대는 밤 9시 이후까지 근무해야 만 원, 택시비는 새벽까지 근무해야 이동 거리에 비례해 받을 수 있어요. 그렇다 보니, 야근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일하는 것 같아요. 일한 만큼에 비해 돈을 버는 것도 아니지만 당장 회사를 나올 순 없으니까요."
포괄임금제는 법정 기준 노동시간을 초과하는 근무가 예정돼 있는 경우, 노사합의를 바탕으로 연장, 야간, 휴일수당을 매월 급여에 포함하여 지급한다. 그러나 근로 시간이 주 52시간을 넘어가더라도 이미 야간 근무 등을 포함해 계약했기 때문에 별도로 지급되는 수당은 없으며, 이에 대해 특별한 제재도 없다. 즉, 근로 시간을 초과한 경우 추가수당을 지급하자는 주 52시간 근무제와 정반대 취지인 셈이다.
또한, 다수의 광고대행사에는 노동조합이 없다. 이 때문에 야근 수당 및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뿐더러 개인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에 부조리를 묵인하기도 한다. B씨는 "주위에서도 야근 수당이나 기타 지원금에 대해 말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라며 "내규로 규정돼 있는 생리 휴가를 쓰려고 해도 눈치가 너무 보인다"라고 전했다.
주52시간제가 시행돼도... 암울한 전망
내년 1월 1일부터 직원이 300인 미만인 중소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소규모의 광고대행사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대비하고 있을까? B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회사가 60~70인 정도의 규모라서 회사 임원진이 주 52시간 근무제를 대비하는 내규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없지만, 결국 회사가 꼼수를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당장 내년부터 제도가 시행된다 해도 당연히 노트북을 들고 집에 가서 지금과 똑같이 야근하지 않을까? 비딩 업무가 겹칠 때는 아무리 일을 빠르게 해도 야근할 수밖에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장시간 근로나 과로사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 주겠다는 현 정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다. 또 정부는 근로 시간이 주당 평균 6.9시간 이상을 감소하게 된다면 생산성과 삶의 질 향상뿐만 아니라 약 14~18만 개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명의 인력 충원으로 자칫하면 회사는 손해를 볼 수 있다. 광고주가 광고대행사에 외주를 맡길 때 계약상 따라야 하는 업무의 범위나 업무량을 정확히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B씨는 "퇴근 시간에 일을 던져주고 다음 날 아침까지 업무를 처리해달라고 한다"라며 "인력이 충원되어도 갑과 을의 업무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소용없다"라고 전했다.
또 코로나로 인해 광고주는 허리띠를 졸라맸다. 즉, 유동 비용에 해당하는 마케팅 비용을 줄여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 여파로 광고대행사가 광고주에게 받아 운용할 수 있는 마케팅 비용에도 문제가 생겼다. 만약 광고대행사가 이러한 이유로 업무 지시를 거부하거나 개선을 요구한다면 업계 내에서 자칫 '스팸 메일'이 될 수도 있다.
더불어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 회사에서 추가 근무를 할 수 없어 대부분의 사무직 근로자들은 재택이나 카페 근무를 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근로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업무 형태와 결과 중심의 업무 지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직업병과 과로사를 야기하는 새로운 '한국형 재택근무'가 될지도 모른다. 또 집이나 회사 밖에서 실근무 시간이 늘어날 수 있는 우려도 있다. 노조와 추가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절대적인 업무량이 늘어난다면 산업재해를 당해도 근무로 인해 직업병이 생겼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할 수도 있다.
산업재해는 원칙보다 법원의 해석에 맡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노동자는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첫째, 기업노조가 없어도 산업별 노조에 가입해야 한다. 향후 문제가 생길 경우 같이 싸워줄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산업별 노조에서는 공익변호사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다음으로, 회사 밖에서 근무하더라도 근무 일지를 꾸준히 기록해야 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록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이럴 때야말로 민주노총 등 각 노조에서는 재판에서 통하는 근무일지 기록법을 알려주면 좋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시민단체 등에 가입해서 갑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법 개정을 요구하는 방법도 있다. 노동자가 요구하지 않으면 결국 노동자만 피해를 본다. 노동자 스스로도 중소규모 회사에서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인력 고용이 정말 어려운 것일까? 임원의 연봉이 너무 높지 않은가? 혹여 회사의 돈이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과연 '합리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다. 이것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 문제다. 투명하지 않은 기업을 걱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동자를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관점을 가져야 적어도 집에서 밤새는 일은 면하지 않을까.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고 해서 과연 광고대행사의 야근이 없어질까? A씨는 말했다.
"야근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요? 퇴사밖에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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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대행사 야근 괴담... '기획안_진짜_정말_최종.pptx'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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